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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금융실명제 시행 D-2] 차명계좌 대처법 자산규모 따라 달라요

[새 금융실명제 시행 D-2] 차명계좌 대처법 자산규모 따라 달라요

입력 2014-11-27 00:00
업데이트 2014-11-27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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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머물던 중견기업 회장 A씨는 최근 아내, 아들, 딸과 함께 급거 귀국했다. A회장이 한걸음에 달려간 곳은 평소 거래하던 시중은행 PB(프라이빗 뱅킹)센터. 가족들 명의로 분산시켜 놓았던 20억원 규모의 차명계좌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법이 허용하는 가족 차명 한도(부인 6억원, 자녀 5000만원)만큼만 남겨두고 14억원은 모두 인출했다. 이 중 2억원은 본인 소유의 해외법인 계좌에 송금하고, 나머지는 달러와 원화로 나눠 가져갔다. A씨는 “편법 증여 목적으로 차명계좌를 운영한 것은 아니다”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일단 (현금을 개인적으로 보관한 뒤) 상황을 지켜보며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해 보겠다”고 말했다.

차명거래를 금지하는 금융실명제법 개정안 시행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자녀 결혼비용을 모으기 위해 자식 명의로 통장을 만들어 놓은 평범한 가장에서부터 뭉칫돈을 가족·지인 명의로 분산 관리해 온 ‘슈퍼리치’(고액 자산가)에 이르기까지 실명제법 개정안에 대처하는 자세는 제각각이다.

●우왕좌왕형 금융실명제는 ‘돈 많은 부자들 얘기려니’ 하고 손놓고 있던 중산·서민층은 대부분 허둥지둥하는 모습이다. 대기업 부장인 B(52)씨는 아들 명의로 1억원을 정기예금에 넣어두고 있다. 아들 결혼자금을 마련해 주겠다는 생각으로 매달 30만원씩 꼬박 30년을 모은 돈이다. 오랫동안 손대지 않고 ‘고이 모셔둔’ 자금이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면 처벌 대상이 된다. B씨는 “1억원을 내 명의로 돌려놓았다가 아들 집 장만에 다시 보태주면 증여세가 부과되는 것 아니냐”며 “(실명제가) 우리 같은 일반인들하고는 관계없는 얘기인 줄 알았다가 처벌대상이라는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준법형 1억원 안팎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이 주로 해당된다. 차명계좌에 있던 자금을 본인 명의의 수시입출금식 계좌로 옮겨 넣어두는 경우가 많다. C은행 PB팀장은 “5000만~1억원 규모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고객은 일단 차명계좌를 본인 명의로 돌려놓고 주가연계증권(ELS)이나 비과세 저축성보험상품 등 투자상품에 대한 상담을 많이 의뢰한다”고 전했다.

●인출형 5억원 안팎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은 차명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가는 사례가 많다. D은행 PB팀장은 “차명계좌 돈을 5만원권으로 교환해 달라거나 부피를 줄이기 위해 10만원·100만원권 수표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며 “환금성이 높은 골드바를 구매하는 사례도 많지만 일부는 음성적 방법을 찾거나 개인금고에 현찰을 쌓아두려는 움직임”이라고 귀띔했다. 인터넷쇼핑몰 옥션에서는 지난 8월부터 석 달간 개인금고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나 증가했다. 이 쇼핑몰의 개인금고 연평균 매출 증가율은 지난해까지 10~15% 선이었다.

●초연형 자산이 10억원 이상인 슈퍼리치들에게서 주로 나타나는 유형이다. 이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차명계좌를 정리해 왔거나, 증여세나 각종 세금도 ‘비용의 일부’라고 받아들인다. D은행 PB팀장은 “고액자산가들 대부분이 조세당국의 집중적인 추적을 받거나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람들이어서 세금에 평소 매우 철저하다”며 “이들은 오래전부터 집에 현금이나 금괴, 달러를 쌓아두는 특성이 있어 금융실명제 개정에 새삼스럽게 민감해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2014-11-27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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