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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설치미술 빚어낸 뇌성마비 시인·비장애 예술가 짝꿍들

협업 설치미술 빚어낸 뇌성마비 시인·비장애 예술가 짝꿍들

입력 2014-11-28 00:00
업데이트 2014-11-28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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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씩 1대1 의기투합… ‘시, 예술에 빠지다’ 28일까지 전시회

“우리 둘은 ‘밝음의 급수’가 같아요. 하하하.”

27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아트홀. 아주 특별한 컬래버레이션(협업)에 참여한 뇌병변장애 1급 정훈소(51)씨가 ‘짝꿍’인 미디어아티스트 채진숙(35·여)씨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한국뇌성마비복지회가 ‘시, 예술에 빠지다’라는 주제로 마련한 이번 전시회는 장애인 작가의 시에 비장애인 예술가의 설치미술·미디어아트 작품들을 접목했다. 지난 25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전시회를 위해 장애인 시인 10명과 비장애인 예술가 10명이 의기투합했다.

뇌성마비 시인 정훈소(왼쪽)씨와 미디어아티스트 채진숙씨가 27일 서울 영등포아트홀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함께 만든 예술작품을 앞에 놓고 환하게 웃고 있다.
뇌성마비 시인 정훈소(왼쪽)씨와 미디어아티스트 채진숙씨가 27일 서울 영등포아트홀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함께 만든 예술작품을 앞에 놓고 환하게 웃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장애를 앓았지만, 항상 미소를 잃지 않는 정씨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어쩐지 잘 통할 것 같았다”며 “밝고 긍정적인 성격이 나와 비슷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지난 9월. 협업에 참여하기로 한 채씨는 지난여름 정씨의 작품을 미리 살펴본 뒤였지만, 막상 만나자 어색함이 감돌았다고 했다. 극도로 집중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은 정씨의 표현을 낯설어한 채씨는 빨리 친해지기 위해 문자메시지를 선택했다. 두 달 동안 매일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둘은 진짜 짝꿍이 됐다.

채씨는 “가볍게 던진 질문에 시인 특유의 감성으로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을 때에는 정말 신선했다”고 말했다. 채씨가 처음 던진 질문은 ‘몸이 불편하지 않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나’라는 것. 정씨는 “사기꾼이 됐을 것”이란 묘한(?) 답을 남겼다. 알고 보니 뇌성마비 시인으로 20년 넘게 활동하다 보니 출판사 등의 원고마감 독촉에 쫓겨 때론 진정성이 떨어지는 글을 쓸 때도 있다는 이유였다.

채씨는 정씨의 생각에 공감했다고 했다. “처음엔 전시 하나하나가 중요했는데 어느 순간 무료해졌어요. 내가 좋아하는 작품과 세상이 좋아하는 작품이 다를 때도 있었고요. 그럴 때마다 옛 느낌을 찾고 싶었는데 선생님과 작업하면서 초심을 되찾은 것 같아요.”

채씨는 정씨의 시 ‘자라지 않는 아이 1, 2’를 보고 영감을 얻어 ‘네버랜드’란 작품을 이번 전시에 선보였다. ‘자라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두 살, 세 살, 다섯 살, 아홉 살/몇 번인가의 봄과 가을이 아이를 다녀가고/아이가 말을 배우고 집으로 초등학교 입학통지서가 날아들어도/자라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로 시작하는 시를 보며 채씨는 “정신적으로 피폐하고 갇힌 현대인을 생각했다”고 했다.

채씨는 지난해 1월 빙판에 미끄러져 발목이 부러진 탓에 6개월 동안 휠체어 생활을 했다. 그는 “다시 못 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심각했었다”며 “병실에 앉아만 있으니 작업을 더 많이 하게 되더라”고 말했다. 당시 ‘고립’된 생활에 대해 고민을 했던 덕에 이번 작업에서 정씨를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정씨는 자신의 시에 나오는 ‘하루 종일 툇마루에 앉아 해만 바라보는 해바라기 같은 아이’가 자신과 닮았다고 했다. 그는 “처음 시를 쓰게 된 것도 집에서 책만 읽던 나를 안타깝게 여긴 형수님이 타자기를 사줬기 때문”이라며 “건강했다면 친구들과 술 마시고 밖으로 돌아다니느라 시를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어느새 시를 쓴 지 25년. 시집도 4권이나 냈다. 꿈을 묻자 그는 “계속해서 글을 쓸 수 있다면 만족한다”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글 사진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2014-11-2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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