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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아들이 애플 물려받지 않듯…”

“잡스 아들이 애플 물려받지 않듯…”

오달란 기자
오달란 기자
입력 2015-07-31 18:31
업데이트 2015-07-31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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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 해법 “재벌도 소유·경영 분리해야”

경영권이 세습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형제간 충돌은 한국 재벌의 고질적인 병폐다. 공정거래위원회 자산 기준 40대 재벌그룹 중 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일어난 곳은 모두 17곳에 달한다. 재벌 2곳 중 1곳이 가족과 친지 간 피 튀기는 재산과 경영권 다툼을 벌인 셈이다.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을 뿐 집안싸움이 시작되지 않은 곳도 적지 않다. 이런 일은 왜 반복될까.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가 롯데 사태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자식에게 경영권을 넘긴다는 이야기를 들어 봤느냐”고 반문한 뒤 “그런 게 정상이다. 그러니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기업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서 “수십년 근무해 검증이 끝난 사람을 경영인으로 세워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전통이 없다는 점에서 적어도 기업문화 부분에서는 후진국”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또 “전체 지분 중 극히 일부만 소유한 사람들을 오너라고 부르고 이들이 경영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조(경제개혁연대 소장)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오너들이 경영권은 주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모른다는 게 한국 재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경영은 오너들의 권리가 아니라 주주들에게 권한을 위임받는 것”이라면서 “롯데 경영권 분쟁의 중앙에 있는 신동빈 회장은 주주들에게 먼저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분한 검증을 통해 후계구도를 선정하는 합리적인 승계 프로그램이 없는 것도 문제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김선웅(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 변호사는 “한국사회는 총수 개인의 재산과 기업이 혈연관계에 의해 대물림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면서 “제대로 된 검증이 없다 보니 형제 중 한쪽이 경영권을 가져가는 것을 다른 형제가 인정하지 못하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적절한 후보를 추천한 뒤 이사회에서 임명하는 전문경영인(CEO) 승계제도를 본떠 총수 승계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우찬(경제개혁연구소장)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경영자로서 적령기가 있는데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은 구순이 넘도록 경영 일선에 있다”면서 “재벌 총수들이 물러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과 마찬가지로 건강에 무리가 오기 전에 퇴임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재벌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한 상황에서 재벌가의 경영권 분쟁이 국가 경제를 흔드는 우스꽝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경영권의 불확실성이 주는 주주가치 훼손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경영구조가 불투명해 자본시장에서 우리 기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외국인 투자자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오너 일가가 경영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서 총수가 사적 이익을 위해 계열사 이익을 희생시킨다거나, 재벌가가 일반주주의 주주가치를 높이는 데는 소극적일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면서 “구시대적인 경영 관행이 남아 있다는 것은 결국 국가의 위험 요소”라고 지적했다.

위기를 해소할 방법에 대한 제언은 대동소이하다. 지금이라도 기업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는 점이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경영을 잘하는 이가 (오너든 전문경영인이든) 기업을 맡도록 하는 인식이 자리잡아야 한다는 얘기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롯데그룹을 사실상 지배하는 일본 롯데홀딩스는 국내 기업이 아니라서 지분 구조 등을 공정거래위원회에 보고할 필요가 없고 일본에서도 상장한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공시 의무가 없다”면서 “한·일 양국의 루프홀(법률상 허점)을 이용해 복잡한 출자 구조를 만들었고 이 때문에 승계 과정에서도 잡음이 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이어 “근본적으로 재벌 승계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기업들이 지주회사 제도로 운영되도록 법을 고쳐야 하고 반드시 국내에 지주회사를 두도록 해야 한다”면서 “기업의 지배구조가 투명하게 공개될수록 재벌들이 후계 다툼을 하는 일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복잡한 재벌의 소유구조를 바꾸긴 어렵기 때문에 주주들의 감시를 강화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상조 교수는 “주주 이익을 두고 벌어진 삼성과 미국계 사모펀드 엘리엇의 분쟁 이후 삼성은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하는 대책을 발표했다”면서 “롯데그룹의 주주들도 오너일가의 경영권 분쟁으로 기업 가치가 훼손된 점에 이의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사회에 소액 주주를 대변할 사외이사를 포함시키고 그 사외이사에게 경영 감시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 역시 “주주들이 시장을 감시하고, 기업에서 벌어지는 비상식적인 경영권 분쟁 등의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의 이사회가 재벌 편에 선 거수기가 아니라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우찬 교수는 “이사회가 독립적이라면 재벌 오너의 부적절한 의사 결정에 제동을 걸 수 있지만 우리 기업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면서 “외부 주주 몫의 이사를 선임하는 등 주주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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