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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미켈란젤로의 소네트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미켈란젤로의 소네트

입력 2017-03-29 17:42
업데이트 2017-03-29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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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
최영미 시인
푸른역사아카데미의 미술사 강의를 준비하다 그의 소네트를 보았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미술가인 미켈란젤로(1475~1564)는 조각가이자 화가이고 건축가이며, 300편이 넘는 시를 쓴 시인이었다. 어떤 평론가는 미켈란젤로를 16세기 이탈리아의 가장 뛰어난 시인이라 칭송하기도 하지만, 글쎄. 내가 이탈리아 시에 정통하지 않아 그의 견해에 동조할 수는 없지만, 미켈란젤로가 말년에 썼다는 소네트는 내 가슴을 두드렸다.

내 기나긴 인생의 여정은 폭풍 치는 바다를 지나,

금방 부서질 것 같은 배에 의지해,

지난날의 모든 행적을 기록한 장부를 건네야 하는,

모든 사람이 거쳐 가는 항구에 도달했다네.

예술을 우상으로 섬기고 나의 왕으로 모신,

저 모호하고 거대하며, 열렬했던 환상은

착각에 지나지 않았네.

나를 유혹하고 괴롭혔던 욕망도 헛것이었네.

옛날에는 그토록 달콤했던 사랑의 꿈들,

지금은 어떻게 변했나, 두 개의 죽음이 내게 다가오네.

하나의 죽음은 확실하고, 또 다른 죽음이 나를 놀라게 하네.

어떤 그림이나 조각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네.

이제 나의 영혼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껴안기 위해

팔을 벌린 성스러운 사랑을 향해 간다네.

The course of my long life hath reached at last,

In fragile bark o’er a tempestuous sea,

The common harbor, where must rendered be

Account of all the actions of the past.

The impassioned phantasy, that, vague and vast,

Made art an idol and a king to me,

Was an illusion, and but vanity

Were the desires that lured me and harassed.

The dreams of love, that were so sweet of yore,

What are they now, when two deaths may be mine,

One sure, and one forecasting its alarms?

Painting and sculpture satisfy no more

The soul now turning to the Love Divine,

That oped, to embrace us, on the cross its a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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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현 기자
이다현 기자
조르조 바사리가 쓴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에 나오는 소네트인데, 존경하는 이근배 선생의 번역도 훌륭하지만 내가 감히 번역해 보았다. 한국에서 최초로 바사리의 전기를 (이탈리아어판을 우리말로) 번역해 책으로 펴낸 분은 전문 번역가도, 미술인도 아닌 의사였다. 의과대 교수였던 이근배 선생의 20년에 걸친 노고와 예술 사랑에 이 자리를 빌려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이근배 선생 같은 분이 진짜 영웅이다. 이근배 선생 같은 분이 더 나타나야 한국의 문화가 살고 나라가 산다.

이탈리아어를 몰라서, 미국의 시인 롱펠로의 영역을 다시 한국어로 옮기는 중역이라 좀 부끄럽다. 성실한 시인 롱펠로의 번역을 믿는 수밖에.

두 번째 행은 그냥 약한 배가 아니라 ‘금방 부서질 것 같은’ 돛단배라고 해야 더 의미가 산다. 당대의 이탈리아인들에게 ‘성스러운 사람’이라 불리던 그 대단한 미켈란젤로의 인생도 ‘금방 부서질 것 같은 배’였다니. 살아서 온갖 영예를 누리고, 죽으며 어마어마한 재산을 남기고(나 같은 사람은 천년을 일해도 못 모을 돈이라고 어느 이탈리아 교수가 말했다) 교황 율리우스 2세에 맞서 싸우기까지 했던 위대한 예술가도 나이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세 번째와 네 번째 행이 번역하기 까다롭다. 지난날의 모든 행적을 기록한 장부를 건네야 하는 항구. “여기를 통과하려면 그들 자신의 과거 행동, 악덕과 탐욕에 대한 설명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뜻이렸다. 이근배 선생은 “선과 악을 영원히 심판받으려고 사람 다 모여드는 항구에 닿았네”(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가전, 탐구당, 1379쪽)라고 의역하셨다.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사람이 노년을 맞아 예술을 버리는 심정이 담담하고 절절하게 표현된 시를 보며, 시스티나 예배당의 벽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이 떠올랐다. 균형과 조화라는 르네상스의 이념을 버리고, 뒤틀린 인체로 가득한 화면에서 내가 읽은 건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위기를 맞은 유럽의 기독교 세계.

미켈란젤로는 신앙심이 두터운 가톨릭 신자였다. 사춘기에 메디치의 예술교육을 받은 그는 메디치를 둘러싼 인문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아름다움을 통해 신에게 도달한다”는 신플라톤주의(Neo-Platonic)를 신봉했다. 이상적인 인체의 아름다움을 조각해 신에 이르려 했던 그의 욕망은 종교개혁의 회오리를 지나며 흔들린다. 흔들리는 자신이 두려웠기에, 그는 신앙심을 고백하는 그토록 많은 소네트를 써야 했다. 시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을 게다.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고,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과 추종자들에 둘러싸여 그는 행복했을까. 젊은 날에 자신을 사로잡았던 예술이라는 위대한 환상을 걷어차고, 십자가에 의지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죽기 며칠 전에 조각한 ‘론다니니 피에타’를 닮았다.

“예술은 착각이었네. 욕망도 헛것이었네.”

또 다른 시에서 지난날을 회고하며 그는 이렇게 한탄한다.

“아- 내 자신에게만 오로지 속했던 날은 하루도 없었네.”

정말일까? 미켈란젤로가 남긴 조각과 그림과 건물들은 그의 것이 아니었나. 그의 엄살을 나는 좀 귀엽게 봐주련다. 예술은 원래 과장이다. 자신의 과거를 송두리째 처절하게 반성하는,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그의 태도야말로 르네상스적인 것이다.

2017-03-3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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