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백승종의 역사 산책] 아버지 송시열의 편지

[백승종의 역사 산책] 아버지 송시열의 편지

입력 2018-02-25 17:54
업데이트 2018-02-25 17:56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미지 확대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대우교수
송시열(1607~1689)은 당쟁이 극심하던 17세기 후반 인물이다. 시시비비의 여운이 몹시 길다. 그러나 그에게는 우리가 몰랐던 뜻밖의 모습이 있었다. 가령 송시열은 여성에게 절개를 강요하는 풍조에 반대했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것은 동일한 의리다. 그런데 이 나라에선 무슨 까닭으로 두 임금을 섬기지 말라는 법은 제정하지 않은 채 여성에게 두 남편을 섬기지 말라 강요하는가.”

고루한 학자였다고 치부할 수 없는 인물이 아니었든가 한다. 한 사람의 아버지로서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양자 송기태(宋基泰ㆍ1629~1711)에게 보낸 편지들이 주목을 끈다(‘송자대전’ 제125권).

1660년 5월(현종 1년) 송시열이 54세 때 서울에서 고향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자. 당시 그는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했다. 효종이 세상을 떠나자 반대파들의 비판이 심해졌다. 편지의 서두는 이러했다.

“앞뒤로 내가 보낸 편지들은 모두 받아 보았느냐. 요즘 서신 왕래가 끊겨 너의 소식을 듣지 못한 지가 한참 되었구나. 그리운 생각이 끝도 없구나.”

한동안 소식을 듣지 못해 아들에 대한 그리움, 고향 생각이 송시열의 가슴을 미어지게 했다. 이어 아버지는 궁지에 몰리고 있는 자신의 정치적 처지를 아들에게 담박한 말투로 고백했다.

“평소 나는 힘을 다해 윤휴(尹?ㆍ1617-1780)를 공격했었다. 그런데 요즘 그의 반격이 매우 무섭구나. 참으로 내가 언제 어디서 죽게 될지를 모르겠다.”

이 사태가 역전되기를 희망하며 그는 아들에게 저간의 사정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황세정(黃世楨ㆍ송시열의 제자)이 상소문에서 윤휴와 그의 사위 이유(李劉)를 혹독하게 꾸짖었다. 이 상소문으로 인하여 저들이 마음을 돌릴 수 있으면 얼마나 다행이겠느냐.”

송시열은 아들을 가장 믿음직한 친구로 여긴 것 같다. 그는 정쟁으로 틈이 벌어지고 있던 옛 친구 윤선거에 대한 섭섭함도 숨김없이 토로했다.

“윤선거(尹宣擧ㆍ1610~1669)가 (윤증의) 이런 점을 비판하면서도 오히려 감싸 주려는 의도를 품고 있구나. (윤휴와는) 오랜 친구 사이라서 쉬 잊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도 싶으나, 황세정의 (날카로운) 비판에 비하면 너무도 미진하구나.”

송시열은 당쟁이 치열한 시대를 살았다. 그와 윤휴, 윤증 등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석학이었다. 저마다 정치적 이해를 달리하는 노론, 남인, 소론의 우두머리로서 격돌했다. 우리 역사의 어두운 한 장면이었다. 오늘의 입장에서는 누구 한 사람만 옳았다고 단정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1689년(숙종 15년) 2월 83세 고령의 송시열은 유배 중이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제 다음 일은 모두 너에게 달렸구나. … 가정의 모든 일이며 아이들의 교육을 네가 아닌 그 누구에게 맡길 수 있으랴. 네가 정신을 가다듬고 힘을 내어 항상 법도에 맞게 처신하여 집안을 보존하고, 가정을 잘 다스리기를 천번 만번 기원하노라.”

아들 송기태도 이미 61세의 노인이었다. 아들에게 뒷일을 부탁한 아버지는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해 6월 송시열은 사약을 마시고 생을 마감했다.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송시열이 목숨처럼 여긴 학문과 도덕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일까. 그의 편지 앞에서 잠시 상념에 젖는다.
2018-02-26 26면

많이 본 뉴스

의료공백 해법, 지금 선택은?
심각한 의료공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의대 증원을 강행하는 정부와 정책 백지화를 요구하는 의료계가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어 대화를 시작한다
의대 정원 증원을 유예하고 대화한다
정부가 전공의 처벌 절차부터 중단한다
의료계가 사직을 유예하고 대화에 나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