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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어느 정도 버거워야 결과가 좋은 삶과 공부의 역설/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열린세상] 어느 정도 버거워야 결과가 좋은 삶과 공부의 역설/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입력 2018-09-02 22:30
업데이트 2018-09-02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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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요건이 있다. 좋은 생활 습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고 적절하게 표현하기,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 등이다. 이들은 저절로 만들어지고 유지되지 않는다. 이들의 가치를 깨닫고 노력을 기울여야 만들어지고 유지되고 발전한다. 한 가지 요소를 더 추가하자면 공부다. 우리 사회를 옥죄는 대입과 취업 혹은 그 밖의 줄 세우기를 위한 경쟁적 공부가 아니라 즐거움, 호기심, 그리고 성장을 위한 공부다. 공부를 통해 얻은 지식과 이를 기반으로 한 우리의 생각은 삶의 지평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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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의 삶은 풍요로움과 멀어지고 있다. 왜일까? 한 이유는 빈부 차이가 커지면서 절대 다수의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이들 요소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어서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그만큼 삶을 주도적으로 영위하기 어렵다. 경제적 어려움이 크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위에서 언급한 요소들을 발전시키려고 충분히 애쓰지 않는다. 그 대신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오락이나 편안함의 유혹에 지배돼 살아간다. 적절한 휴식과 오락은 에너지를 재충전하게 해 주지만 지나치면 이에 중독되거나 아니면 공허함에 빠지기 쉽다. 답답한 삶을 변화시키려고 모종의 시도를 해 보기도 하지만, 대개 꾸준히 지속하지 못하고 다시 평소 상태로 되돌아간다. 삶의 역설은 편안하고 즐거운 삶에서는 공허함을 느끼기 쉽고, 수많은 역경 속에서 목표를 추구하고 의미를 만들어 갈 때 진가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도 이 도식에 들어맞는다. 쉽게 배운 내용은 쉽게 사라지고, 어렵게 공부하면 잘 기억하고 더 잘 활용하게 된다. 이를 보여 주는 실증적 증거는 ‘시험효과’다. 일군의 학생들로 하여금 강의를 듣게 한 다음 3일 후에 그중 반은 강의 내용을 복습하게 하고 나머지 반은 강의 내용에 대해 시험을 보게 했다. 1주일 후에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문제로 최종 시험을 보면 중간에 시험을 본 학생들이 복습을 한 학생들에 비해 더 높은 점수를 받는다.

그런데 정작 학생들은 시험이 이렇게 효과적인지를 모른다. 중간에 복습이나 시험을 보게 한 직후에 최종 시험 결과를 예측하게 하면 복습을 한 학생들은 실제 점수보다 더 높게 예측하고 시험을 본 학생들은 반대로 더 낮게 예측한다. 학생들의 점수 예측이 실패하는 이유는 예측의 근거가 착각을 일으키는 느낌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복습을 하는 동안에는 이전에 배웠던 내용을 다시 보기 때문에 쉽게 느껴지는 데 반해 시험을 볼 때는 기억해 내려고 애쓰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진다. 따라서 공부를 잘하려면 느낌에 따르는 대신 시험을 보는 것과 같이 더 효과적으로 입증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중간 시험을 보면 왜 최종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을까. 이를 알아보려고 중간에 시험을 보거나 복습을 하게 한 다음 그 활동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0에서 100까지의 평가하는 실험이 수행됐다. 그 결과 복습을 할 때보다 시험을 볼 때 더 힘들어했는데, 힘들어하는 정도만큼 최종 시험 점수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힘들어하는 정도를 최종 시험 점수에서 빼고 나면 시험을 볼 때와 복습을 할 때 간의 차이가 사라진다. 이 결과는 시험 효과가 단지 중간에 시험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시험을 보는 동안 들인 노력 때문에 초래된 현상임을 알려 준다. 요컨대 애를 쓴 만큼 실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시험효과는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는 유클리드의 통찰을 심리학 실험으로 확인해 준 셈이다. 머리를 쓰지 않으면서 머리가 좋아질 수 없다. 따라서 잘 가르치는 사람은 강의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적절하게 어려운 수준의 과제를 제시해 학생들이 생각하도록 수업을 진행하고, 머리를 써서 답할 문항으로 평가하는 사람이다. 단지 변별력을 높이려고 이리저리 꼬아서 복잡하게 만든 문제가 아니라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이라도 생각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로 학생들로 하여금 지적 성장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깊게 고민하는 가운데 성장을 경험하는 학생들이 많아지면 청출어람은 시간문제다.
2018-09-0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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