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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종전선언서 제재완화로 ‘과녁이동’…내부 비핵화 명분 필요

北, 종전선언서 제재완화로 ‘과녁이동’…내부 비핵화 명분 필요

김태이 기자
입력 2018-10-16 14:57
업데이트 2018-10-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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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러 3자협상 공동보도문 이어 잇달아 제재 해제 언급

그동안 종전선언 실현에 집중해온 북한이 이달 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 전후로 대북제재 완화에 총력전을 펴고 있어 주목된다.

북한의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미국에서 울려나오는 곱지 못한 소리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제목의 김철명 명의 글을 통해 미국의 대북제재 강화 기조를 비난한데서도 이런 기류가 읽힌다.

글은 “우리가 핵시험을 그만둔 지도, 대륙간탄도로켓 발사를 중지한 지도 퍼그나(퍽) 시일이 흘렀으면 응당 이를 걸고 조작한 제재들도 그에 맞게 사라지는 것이 순리”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제재를 계속하겠다는 것은 곧 적대시정책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것”이며 “바꿔 말하면 관계 개선을 그만두겠다는 것”이라고 논리를 폈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려면 대북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 셈이다.

이어 글은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후 북미관계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며 미국의 대북제재 지속 주장은 대북 강경파들에 의한 것이고 중간선거용, 즉 미국 내부 정치용이라는 나름의 분석과 평가를 내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의 대북제재 지속 발언과, 한국의 대북 독자제재 해제가 ‘미국 승인 없이 안된다’는 트럼프 발언에 대해서도 ‘발화자’를 백악관과 미 국무부로 지칭함으로써, 트럼프 대통령 주변의 대북강경파를이 벌이는 여론전 맥락으로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 주변 실무 관료들을 분리하는 논법을 통해 협상 판을 깨지 않으면서 대북제재 완화를 북미 협상의 핵심 의제로 만들어 가겠다는 속내를 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조선중앙통신의 글은 이달 내 개최가 예상되는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실무협상을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북한이 제재해제를 실무협상 주 의제로 삼을 것이라는 관측을 가능케 한다.

이런 가운데, 종전선언이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는 상황에서 북한이 제재완화를 다음 과녁으로 삼으려는 행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들어 북한 매체에서 종전선언 요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이날 김철명의 글에서도 종전선언 언급이 한마디도 없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이후 대북제재 완화를 이슈화하고 비핵화의 핵심 의제로 부각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앞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지난달 유엔총회 연설에서 대북제재가 대미 불신을 증폭시키는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하며 ‘부당성’을 집중하여 성토했다. 특히 최선희 부상이 참석한 가운데 김정은 정권 들어 처음 열린 북중러 3국 외교차관급 회담의 공동보도문은 대북제재 완화를 위한 3국의 공조를 핵심으로 거론했다.

북한이 유엔 안보리를 중심으로 한 대북제재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우군으로 삼아 대북제재 완화의 동력으로 만듦으로써 비핵화 협상에서 대북제재 완화를 의제화하려는 본격적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한 외교소식통은 “이 회동의 핵심은 대북제재 완화에 3국이 협력한다는 것”이라며 “북한도 완전한 비핵화 이전까지 완전한 제재 해제가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비핵화의 구체적인 조치에 따라 조율된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이처럼 대북제재 완화에 총력전을 펴는 것은 김정은 정권의 정치·경제적 명분과 직결돼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어렵게 만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미국에 내줄 수 있도록 간부와 주민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동안 자신들은 핵실험·미사일 발사 중단과 핵실험장 폐기 등 일련의 비핵화 조처를 했지만 미국으로부터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어서 간부와 주민들이 반색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철명의 글에서 “우리 인민들은 미국은 받을 줄만 알고 하나도 줄 줄 모르는 나라이다, 초대국치고 속이 너무 옹졸하다고 누구나 말하고 있다”고 밝힌 데서 북한의 속사정이 드러난다.

고위층 탈북민 출신인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 체제의 특성상 ‘핵 고수’라는 보수적 마인드에 길들여 있는 실무자들과 핵무기 개발과 관리의 종사자들을 향해 김정은 위원장이 결단을 내리려면 합당한 명분과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며 “이는 최고지도자의 위상·능력과 직결됐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5만 명의 평양시민이 모인 5월1일경기장에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비핵화 약속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비핵화 조치의 명분과 보상은 더욱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다.

외교소식통은 “평양시민 15만 명 안에는 간부층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상당히 포함됐다”며 “문 대통령의 비핵화 연설이 일파만파로 퍼져가면서 핵을 포기하는 대신 경제성장 등 북한의 밝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훨씬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책임연구위원은 “미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조치 이전에라도 대북제재를 일부 완화하지 않아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실행에 차질이 생겨 주민들의 어려운 삶이 지속한다면 김 위원장의 결단에도 부정적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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