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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국민 눈높이에 대하여/임창용 논설위원

[서울광장] 국민 눈높이에 대하여/임창용 논설위원

임창용 기자
임창용 기자
입력 2018-12-06 22:00
업데이트 2018-12-0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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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율 인상 부분이 가장 국민의 눈높이와 맞지 않는다고 대통령이 생각하고 계신다.”(김의겸 청와대 대변인), “헌법기관들이 아직 국민 눈높이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문재인 대통령),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장관들을 교체했다는 의미가 있다.”(8·30 개각에 대한 언론 보도),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점검하고 성찰하는 데 부족한 면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된다.”(김상환 대법관 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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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 심의실장
임창용 심의실장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핫’한 문구 중 하나가 ‘국민 눈높이’가 아닐까. 취임사를 할 때도, 정책을 발표할 때도,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비판할 때도, 인물을 중용하거나 면죄부를 줄 때도 국민 눈높이가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고 있으니 말이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이나 국민 상당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임명을 강행할 때 내세운 명분도 국민 눈높이였다. “국민 눈높이에 비춰 결정적인 하자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유은혜 교육부 장관 후보자 임명 당시 청와대 대변인)처럼. 이렇게 임명된 장관들 역시 취임사에선 이구동성으로 국민 눈높이를 외쳤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투명하고 효율적인 국방운영 체계를 확립하겠다.”(정경두 국방부 장관)

한데 궁금증이 생긴다. 국민 눈높이가 뭐지? 사람마다, 세대마다, 처해진 환경에 따라 생각이 다른데 어떤 기준으로 눈높이를 잴 수 있다는 거지? 이렇게 국민 눈높이를 남발해도 되는 건가 등등. 생각할수록 의문이 꼬리를 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민 눈높이가 유난히 애용된 것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란 점이다. 네이버에서 꽤나 꼼꼼히 검색해 본 뒤 내린 결론이다. 물론 그전에도 쓰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습관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뒤부터다.

대통령이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겠다는데 누가 시비를 걸 수 있을까.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엔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돼 있지 않은가. 한데 투표를 통해 작용하는 국민주권과 달리 국민 눈높이는 막연하고 모호해 적용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아이들 학습서인 ‘눈높이 수학’만 봐도 유아 나이나 초등학교 학년별로 세분화해 놓지 않았나. 뭉뚱그려서 무차별적으로 국민 눈높이를 들이대면 그게 진정한 눈높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국민 여론이나 지지도를 국민 눈높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맞는 측면도 있지만 상당한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대부분의 정책은 각기 다른 환경에 처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와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이해가 상충하는 사안에서 설문조사나 여론조사를 통해 다수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내리면 소수의 이익은 항상 침해될 수밖에 없다. 부자 증세를 놓고 조사를 하면 대개 찬성이 많고, 건강보험료를 인상하겠다고 하면 반대가 많은 것과 같은 이치다. 이를 근거로만 정책을 세우면 자산가들은 큰 손해를 보고 건보료 재정은 결국 파탄 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건복지부가 고심해서 작성해 올린 국민연금보험료 개편안을 문 대통령이 국민 눈높이를 내세워 돌려보낸 것은 아쉬움이 크다. 현시점에서 다수인 4050세대의 지지를 얻기 위해 소수의 1020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긴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국민 눈높이의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편의에 따라 달라지는 병폐도 크다. 국회 인사청문회만 해도 이번 정부 초기엔 위장전입과 다운계약 등 까다로운 5대 인사 배제 기준을 내세웠다가 나중엔 위반 시기를 따지는 등 검증 잣대를 낮췄다. 자녀 학교 배정을 위한 위장전입은 두 번까지는 봐주고, 2005년 이전 다운계약은 책임을 묻지 않는다 등이다. 과거 관행이었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줬다. 한데 내 주변을 돌아보면 위반하지 않은 지인이 위반한 사람보다 훨씬 많다. 그런데도 청와대 대변인은 국민 눈높이에 비춰 하자가 없다고 한다. 국민 눈높이가 불과 1, 2년 만에 늘었다 줄었다 하는 고무줄인가.

청와대 참모든, 부처 장관이든 입을 열 때마다 국민 눈높이를 앞세우지 말기를 바란다. 정치인이나 언론도 마찬가지다. 정작 국민은 그 눈높이가 자신의 것이 아닌 그들의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고 싶다면 ‘이게 혹시 내 눈높이는 아닐까’ 하는 의문부터 가져 보길 바란다. 아니면 솔직하게 “대통령의 눈높이에 맞춰”, “내 눈높이에 맞춰”라고 표현하든가.

sdragon@seoul.co.kr
2018-12-0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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