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급 작품 다루는 책임 크지만, 특혜라고 생각”…뭉크 작품 가장 먼저 가까이서 살핀 김주삼 소장

“국가유산급 작품 다루는 책임 크지만, 특혜라고 생각”…뭉크 작품 가장 먼저 가까이서 살핀 김주삼 소장

윤수경 기자
윤수경 기자
입력 2024-05-26 18:01
수정 2024-05-2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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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창간 120주년 뭉크전 상태조사 맡아
미술품 복원, 보존 물론 상태 진단, 예측까지
‘달빛 속 사이프러스’ 등 뭉크 유화 작품 다시 봐
오르세미술관전 등 국내 굵직한 전시 자문 도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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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Art C&R) 작업실에서 만난 김주삼 소장의 모습. 곳곳에 유명 갤러리, 미술품 경매사 등에서 맡긴 작품들이 놓여있다. 윤수경 기자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Art C&R) 작업실에서 만난 김주삼 소장의 모습. 곳곳에 유명 갤러리, 미술품 경매사 등에서 맡긴 작품들이 놓여있다.
윤수경 기자
“‘테크닉의 달인’이라고 느껴질 만큼 붓칠을 몇 번 하지 않고 속도감 있게 인물을 표현한 뭉크의 유화 작품들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작업실에서 지난 24일 만난 미술품 보존·복원 전문가 김주삼(64)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Art C&R) 소장은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뭉크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김 소장은 서울신문 창간 120주년 기념 전시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의 22일 개막에 앞서 15~18일 전 세계 23곳의 소장처에서 온 140점의 뭉크 작품을 가장 먼저 가까이서 살핀 인물이다.

“국가유산급 미술품이 전시를 위해 이동할 때는 꼭 상태조사라는 걸 해요. 운반 도중에 미술품이 손상되지 않았는지 살피는 거죠. 미술품 복원가라고 보존, 복원만 하는 게 아니라 작품이 어떤 상태인지 살피는 것도 역할 중 하나입니다. 마치 의사가 처방에 앞서 진료를 하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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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전 개막에 앞서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미술품 보존·복원 전문가인 김주삼(가운데)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Art C&R) 소장이 전시 관계자들과 뭉크의 대표작 ‘절규’(1895) 채색판화의 상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오장환 기자
뭉크전 개막에 앞서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미술품 보존·복원 전문가인 김주삼(가운데)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Art C&R) 소장이 전시 관계자들과 뭉크의 대표작 ‘절규’(1895) 채색판화의 상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오장환 기자
지난 1일 미국 뉴욕 존 쇼크 갤러리의 뭉크 소장작이 처음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한 이후 15일 노르웨이 뭉크미술관에서 온 작품까지 무진동 차량을 통해 서초동 예술의전당 수장고로 조심스럽게 옮겨졌다. 보통 전시를 위해 미술품이 이동할 때 손상이나 도난을 대비해 천문학적인 금액의 보험을 들어 놓는다. 이동 중 작품이 손상되는 경우 보험에 의한 보상을 받기 위해 혹은 책임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호송인(작품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과 현지 미술품 복원가 입회 아래 작품 포장을 풀고 보존 상태를 면밀하게 조사한다.

그는 “‘크레이트’(미술작품 전용 포장 상자)를 열면 안에 보장재가 어마어마한데도 기압, 기온 변화 등으로 종종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며 “루페(확대경), 측광 라이트, 자외선·적외선 램프 등으로 균열은 물론 물감이 들떠 있는 부분, 과거 작품의 수리 여부 등을 확인해 모든 사항을 상태조사서에 기재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현장에서 소장자의 허락을 얻어 보존 처리 등을 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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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전 개막에 앞서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미술품 보존·복원 전문가인 김주삼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Art C&R) 소장이 전시 관계자들과 뭉크의 ‘팔뼈가 있는 자화상’(1895)의 상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오장환 기자
뭉크전 개막에 앞서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미술품 보존·복원 전문가인 김주삼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Art C&R) 소장이 전시 관계자들과 뭉크의 ‘팔뼈가 있는 자화상’(1895)의 상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오장환 기자
김 소장이 이번 뭉크전 140점을 살피는 데는 꼬박 나흘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특이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는 “‘불타는 욕망, 얀(노르드스트란)’(1892)의 경우 적외선으로 보니 그림 뒤로 여인의 형상이 보였다”며 “‘펜티멘토’라고 하는 현상으로 원래 그림을 덮고 그 위에 다시 그림을 그렸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 투명해지는 유화의 특성 때문에 밑의 그림이 보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송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사례도 있었다. 한 개인 소장작이 액자에 고정되지 않은 채 온 것이다. 그는 “허술하게 고정돼 있는 부분을 개인 소장자 대리인, 담당 큐레이터 등의 동의하에 현장에서 수리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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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속 사이프러스’(1892)
‘달빛 속 사이프러스’(1892)
이번에 살핀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묻자 그는 상기된 목소리로 ‘달빛 속 사이프러스’(1892)를 꼽았다. “맨 앞 화분에 꽃 한 송이를 ‘임파스토’(물감을 두껍게 바르는 방식으로 물감을 떠서 주요한 부위를 강조하는 유화 기법)로 남긴 것이 인상적이었죠. 그 밖에 유화 작품 대부분이 좋았는데 뭉크의 초상화, 풍경화 등도 다시 보게 됐어요.”

김 소장은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지만 1987년 훌쩍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5년 만에 파리1대학에서 미술품 복원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 리움미술관에서 보존연구실장을 지냈으며 이후 Art C&R을 운영하며 국민대 문화재보존학과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앞서 ‘루브르박물관전’(2006~07, 2012~13), ‘오르세미술관전’(2007, 2011, 2016~17),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2021~22) 등 국내 굵직한 전시의 자문을 도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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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김주삼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Art C&R) 소장이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오장환 기자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김주삼 미술품보존복원연구소(Art C&R) 소장이 ‘에드바르 뭉크: 비욘드 더 스크림’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오장환 기자
“보통 사람 눈에는 안 보이는 것들을 보는 게 저의 직업이지요. 또 작품 상태를 보고 앞으로 어떤 문제가 생길지 예측도 하고요. (제 직업이) 엄청난 책임감이 따르지만 작품에 근접에서 작품을 보고 만진다는 점에서 일종의 ‘특혜’라고 생각해요. 제가 작품을 살피며 느꼈던 감동을 관람객들도 함께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개막 4일 만인 26일 관람객 1만명을 돌파한 이번 전시는 오는 9월 19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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