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란 직업은 얼마나 훌륭한 성인군자여야 하는가”

“대통령이란 직업은 얼마나 훌륭한 성인군자여야 하는가”

입력 2012-10-13 00:00
수정 2012-10-13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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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쪽짜리 ‘막스 베버’ 펴낸 김덕영 박사

‘막스 베버’(도서출판 길 펴냄)를 낸 김덕영(54) 박사를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 찻집에서 만났다. ‘막스 베버 이 사람을 보라’(인물과사상 펴냄)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저자 이름이 낯익을 것이다. 베버의 생애에 초점을 맞춰서 한번 정리했다면, 이번에는 법학자, 경제학자, 사회학자로 변신해 가는 베버의 학문적 여행에 초점을 맞췄다. 분량이 만만찮다. 본문 900여쪽, 주석까지 합치면 1000여쪽이다. 그런데 막상 펴들면 의외로 쉽게 읽힌다. 대학생 수준에 맞춰서다. 문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베버에게 끼친 영향,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를 프랑스식 포스트모던 해석이 아니라 독일식 해석으로 읽어내는 부분 등 눈길 끄는 대목이 많다. 그러나 최근 한국 상황과 맞물린 몇 가지 질문과 대답만 정리했다.

막스 베버를 통해 엄격한 근대주의를 배웠다는 김덕영 박사. 게오르크 지멜, 마르틴 루터 등에 대한 연구서와 함께 한국의 근대를 환원적 근대성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하는 책을 낼 예정이다.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막스 베버를 통해 엄격한 근대주의를 배웠다는 김덕영 박사. 게오르크 지멜, 마르틴 루터 등에 대한 연구서와 함께 한국의 근대를 환원적 근대성이라는 관점에서 조명하는 책을 낼 예정이다.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등장한 ‘선택적 친화력’이 최근 큰 인기였다. 박정희 평가에 동원될 수 있는 개념이라서다. “경제성장 ‘초기’는 ‘권위주의’ 정권과 친화성이 있다.”는 식의 경제성장을 하려면 독재는 어쩔 수 없었다는 건데,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다. 유신은 수출 100억 달러를 위한 조치였다는 홍사덕 발언이 한 예다. 당신 개념이 왜 박정희 정당화에 쓰이는가라고 묻는다면 베버는 뭐라 답할까.

-앞으로 한국을 ‘환원적’ 근대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책을 내겠다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우선 한국의 성장을 두고 흔히 ‘압축적’ 근대화라고 하는데 산업혁명 등으로 먼저 근대화 길을 걸은 영국을 제외한 모든 후발국가들은 다 압축적 근대화다. 그 표현은 한국의 근대화에 적당한 용어가 아니다. 그러면 왜 환원적 근대화냐. 우선 베버가 말한 근대화는 다양한 측면이라는 점을 알아둬야 한다. 근대화 영역도 정치, 경제, 문화, 종교처럼 다양해야 하고, 근대화 주체도 각 계층, 이익단체, 시민 등 다양해야 한다. 그런데 박정희는 근대화를 경제적 근대화에만 환원시켰다. 두 번째로 경제적 근대화 역시 다양한 내용이 있다. 시장의 합리성, 노동조건이나 노동복지의 합리성, 화폐·금융 시스템의 합리성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이 모든 걸 다 무시하고 양적 성장으로만 환원시켰다. 박정희가 근대화했다지만, 그것은 일부 재벌과 개발 관료들이 주도한 양적 성장이라는, 근대화라는 큰 덩어리 가운데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래서 정말 연구해야 할 부분은 박정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근대화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베버가 ‘선택적 친화력’이라는 표현을 쓸 때 원래 의도한 바는 종교와 경제처럼 누가 봐도 서로 배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묘하게 어울린다는 의미가 강하다. 그 뜻을 잘 곱씹어봐야 한다.

→베버가 진보진영에 주는 화두는 아무래도 ‘책임윤리’일 듯 싶다. 최장집 그룹에서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폴리테이아 펴냄)를 내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 문제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두고 ‘무소속 대통령이 무슨 정책을 추진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과도 연관 있다. 책에서 이 문제를 “행위와 체념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라는 아주 인상적인 표현으로 정리했는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정치를 하는 데 있어서 소명의식, 열정, 도덕성 다 중요하다. 그런데 전문적 훈련과 역량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베버의 생각이다. 우리 사회에서 직업이라 하면 밥벌이의 비루함이 떠오르기 때문에 ‘소명’이라 번역한 것 같은데 그 때문에 나는 오히려 ‘직업’이란 표현을 썼다. 직업이란 베버적인 의미에서 전문성을 뜻한다. 한 사람이 철학, 신학, 수학을 다 다루던 교양인의 시대가 가고 근대는 전문적 직업인의 시대라는 것이다. 직업의 전문성이란 베버가 보기에 한 걸음 물러날 줄 안다는 것이다. 내 분야가 아닌 분야에서 물러난다는 의미이자, 내 분야에서도 합리적 판단을 하려면 객관적 거리를 확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대상에서 한 걸음 물러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문성이란 자기제한이자 일종의 체념이라는 게 베버의 통찰이다. 한국사회에서 안철수 현상이라는 것 자체가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거니와, 그런 안철수를 끌어내린답시고 도덕성 검증에 올인하는 행태도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다. 국회의원이라는 직업적 전문 정치인을 괜히 뽑아두는 게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하고, 동시에 대통령이라는 직업적 전문 정치인이 대체 얼마나 훌륭한 성인군자이자 도덕적 슈퍼맨이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도 한번 따져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로부터의 근대화, 비스마르크의 권위주의적 전통 등으로 인해 독일이 ‘비정치적 민족’이 되어버렸다는 베버의 한탄이 한국적 상황에 비춰봤을 때 아주 인상적이었다.

-바로 그 부분이다. 우리는 정치라고 하면 무슨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 행하는 엄청나게 대단한 결단처럼 여긴다. 정치하는 사람도 그렇게 떠들고, 선거하는 국민들도 선거만 잘 치르면 내일 당장 천지개벽이 일어나야 하는 것처럼 군다. 그러면서 정작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나라님과 관료와 전문가들이 알아서 하라고 한다. 정치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쉽게 말하면 무슨 일이든 내 목소리도 반영하라는 것이다. 주장하고 참여하면 된다. 그런데 모두 거창하고 추상적 구호만 얘기할 뿐, 디테일하고 실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말도 하지 않는다. 가장 정치적인 것 같은데, 가장 비정치적인 태도다.

→마지막으로 요즘 글로벌 경제위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이 경제이론을 넘어서는 발언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베버를 떠올리게 할 만큼 역사적, 제도적 관점에서 발언을 쏟아낸다. 그런데 정작 베버는 1890년대 벌어진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과 한계효용학파 간의 방법론 논쟁에서 한계효용학파 쪽으로 기울었다. 이 부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 부분은 베버가 생전에도 많은 비판을 받았고, 박사학위 논문으로 그 주제를 다룬 나도 많이 비판받았다. 비판 내용은 왜 독일 편 안 들고 오스트리아 편을 들었냐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한계효용학파라는 표현보다 이론경제학파, 혹은 오스트리아학파라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오늘날에도 여전한 편견 중 하나는 경험적 자료가 축적되면 이론은 자연스럽게 나온다는 생각이다. 베버는 역사와 이론의 통합을 추진하되 이런 편견을 타개하기 위해 이론 중심의 통합을 추구했다. 그러다 보니 방법론 논쟁에서도 어떻게든 모델을 만들어내려 했던 이론경제학 쪽으로 기울어진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는 베버는 부르주아 사회학자이고,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사회학자라는 식으로 둘을 대립시키려는 태도로 이어진다. 독일 학계 입장에서야 ‘헤겔-청년헤겔학파-마르크스’의 계보가 있고 ‘칸트-신칸트학파-베버’의 계보가 있으면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런데 베버가 신칸트학파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그건 인식론 분야에 한정됐다. 오히려 베버는 마르크스를 높게 평가했다. 마르크스도 기본적으로 영국 역사에서 자본주의 이론을 뽑아낸 것 아닌가. 역사와 이론을 통합하되 이론 중심으로 통합한다는 베버의 입맛에 딱 맞는 사례다. 내가 ‘마르크스를 사랑한 베버리언’이란 표현을 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베버가 가장 의식했던 인물은 마르크스라기보다 베르너 좀바르트였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2-10-1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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