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클라이밍 속도 부문’ 이승범
아시아선수권 세계 1인자 꺾고 우승
中·인니 강자들 이기니 긴장감 줄어
선발전 2위지만 오히려 마음 다잡아
경기 집중해 습도·부정 출발 등 주의
항저우아시안게임 스포츠 클라이밍 속도 부문 대표 이승범이 지난해 5월 서울 중랑스포츠클라이밍경기장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월드컵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다.
이승범 선수 제공
이승범 선수 제공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스포츠클라이밍센터에서 만난 이승범(24·중부경남클라이밍)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다. 조금만 무리해도 부상이 생기고 회복 속도도 느리다”며 “마지막 아시안게임이라 생각하면서 개인 기록을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고, 선수 3명이 차례로 암벽을 오르는 릴레이에선 호흡을 맞추는 훈련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전했다.
항저우아시안게임 스포츠 클라이밍 속도 부문에 출전하는 이승범은 고등학생 3학년 때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뒤 줄곧 국내 정상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4월 7일 열린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동갑내기 이용수(24·오현등고회)에게 1위를 뺏겼고, 이를 계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수년 만에 국내 2등을 하니까 ‘기량이 떨어졌나’ 의심이 들면서 마음이 확 내려앉았다”며 한숨을 내쉰 그는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하면 국제 무대에 나설 수 없기 때문에 선발전이 더 부담된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1위가 아니어도 출전 자격은 똑같이 주어지니까 다음 경기에 집중하자고 스스로 다독였다”고 말했다.
8강에서 고배를 마신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 대해서는 “당시엔 세계적인 선수들과 기량 차이가 커서 실수하지 않아도 이기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격차를 많이 줄였다”며 “기록이 빨라지면 실수도 잦아지기 때문에 경기에만 집중해 변수를 줄이면 충분히 메달을 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잠원 한강공원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세계랭킹 1위인 인도네시아의 베드리크 레오나르도를 꺾고 한국 남자 선수 중 최초로 우승한 경험은 그 가능성을 확신으로 바꿔 놓았다.
이승범은 “사실상 아시안게임 우승이나 마찬가지다. 대회 규모는 조금 작지만 출전 선수 면면은 비슷하다”며 “세계에서 1, 2위를 다투는 중국과 인도네시아 선수를 모두 이겼다. 항저우에서 다시 만나도 이겼던 경기를 떠올리면 긴장감을 줄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확신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소방구조대에서 근무하던 아버지를 따라 클라이밍을 시작한 이승범은 남다른 승부욕으로 각종 대회를 휩쓸었다. 그러나 신장이 184㎝까지 성장하면서 체중도 함께 늘어 높이 오르는 ‘리드’나 과제를 푸는 ‘볼더링’에서 기량이 점차 하락했다. 이에 고교 진학 후 스피드로 종목을 전향했고, 한겨울 야외에서 눈을 맞으며 2년간 훈련한 끝에 국내 최고 선수 반열에 올랐다.
스포츠 클라이밍 속도 부문은 ‘운이 따르지 않으면 절대 1등을 할 수 없는 종목’이기 때문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예측할 수 없다. 이승범은 “습도와 같은 환경, 당일 선수 컨디션 등 변수가 많다. 부정 출발하거나 미끄러지면 한순간에 모든 노력이 무너질 수 있다”며 “두 번째 아시안게임이라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다. 상대를 신경 쓰지 않고 내 기록에만 집중하겠다”고 다짐했다.
2023-09-19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