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한국대표단 활동 지원한 佛 작가… 임정 첫 공식 외교 도왔다 [대한외국인]

파리 한국대표단 활동 지원한 佛 작가… 임정 첫 공식 외교 도왔다 [대한외국인]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24-09-22 19:47
수정 2024-09-23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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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교과서 사진 속 에밀 블라베

살고 있던 건물에 사무실 내줘
김규식 통신국 설치·공보 활동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
각국에 일제 침략 부당성 알려
부인 뒤피는 간행물 교정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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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6~8월쯤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단의 사진. 앞줄 맨 오른쪽부터 대표단을 이끈 김규식, 블라베 부부, 여운홍. 뒷줄에는 부대표를 맡았던 이관용(왼쪽 두 번째)과 임시정부 외교활동의 사무를 지원한 조소앙(세 번째), 황기환(맨 오른쪽) 등이 자리했다. 독립기념관
1919년 6~8월쯤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프랑스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표단의 사진. 앞줄 맨 오른쪽부터 대표단을 이끈 김규식, 블라베 부부, 여운홍. 뒷줄에는 부대표를 맡았던 이관용(왼쪽 두 번째)과 임시정부 외교활동의 사무를 지원한 조소앙(세 번째), 황기환(맨 오른쪽) 등이 자리했다.
독립기념관


1919년 1월부터 열린 파리강화회의는 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재편하는 중요한 무대였다. 한국의 독립운동가들도 국제사회에 독립 의지를 알리기 위해 대표를 파견하고 본격적인 외교 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이때 진용을 갖춘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 한국대표단(파리위원부)의 사진은 중학교 2학년 역사 교과서에 실렸고, 1919년 4월 출범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첫 공식 외교활동을 기념하는 기록으로 널리 알려졌다. 같은 해 6~8월쯤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진의 앞줄 한가운데에는 외국인 노부부가 앉아 있다. 사진 속 중심인물이지만 정작 이들이 누구인지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아인슈타인과 비슷한 외모의 백발 신사는 프랑스의 저명한 작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에밀 블라베(?ile Raymond Blavet·1838~1924), 그의 옆은 부인 뒤피(Jos?hine Lucie Olympe Dupuis·1855~1919) 여사다. 블라베는 극작가, 소설가, 보드빌 작가 등으로 활약했고 1885~1892년엔 파리 오페라극장 사무총장을 지냈다. 잡지 ‘르 루랄’을 창간하고 일간지 ‘르 골로아’, ‘라 프레스’, ‘라 비 파리지엔느’의 편집장도 맡았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받았다.

블라베는 자신이 살던 건물 한쪽을 김규식(1881~1950·대한민국장) 등 한국대표단이 사무실로 쓸 수 있도록 내줬다. 파리 9구 샤토 38번지의 이 건물은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는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중 하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청사 1919~1920’라는 현판도 걸려 있다.

외국어에 능통했던 김규식은 신한청년당에서 활동하며 한국 대표로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됐다. 1919년 2월 1일 중국 상하이에서 출발해 3월 13일 파리에 도착한 김규식은 중국 국민당 인사들과 가까웠던 중국인 이유잉(이석중·1881~ 1973)의 집에서 3월 20일부터 4월 14일까지 머물렀다. 그 사이 2·8독립선언, 3·1운동, 4월 11일 임시정부 수립까지 한국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리려는 열망이 분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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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블라베가 대표단에 제공했던 프랑스 파리 9구 샤토 38번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사무실’이 있던 건물의 모습. 파리 오페라극장의 북쪽, 생라자르역 동쪽으로 서너 블록 떨어진 십자로 옆에 자리잡은 7층짜리 석조 건물이다. 독립기념관 국외독립운동사적지 홈페이지
에밀 블라베가 대표단에 제공했던 프랑스 파리 9구 샤토 38번지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사무실’이 있던 건물의 모습. 파리 오페라극장의 북쪽, 생라자르역 동쪽으로 서너 블록 떨어진 십자로 옆에 자리잡은 7층짜리 석조 건물이다.
독립기념관 국외독립운동사적지 홈페이지


김규식은 블라베의 아파트로 옮긴 날 곧바로 한국통신국을 설치하고 공보 활동을 시작했다. 식민 지배를 받던 한국의 독립 문제가 파리강화회의 의제로 상정되지는 못했지만 대표단은 파리에 모인 각국 대표단과 유럽 곳곳에 일제 침략의 부당성과 한국의 독립 의지를 적극적으로 알렸다. 영어와 불어로 발행한 정기간행물 ‘통신전’을 유럽 각 언론기관과 대표들에게 보냈고 소책자와 언론 기고, 각종 설명회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의 독립 필요성을 호소했다.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 일본의 강제 합병과 3·1운동의 진상 등을 설명하고 한국 문제를 다뤄 줄 것도 촉구했다.

블라베의 부인 뒤피는 1919년 9월 말 지병으로 숨지기 전까지 한국통신국에서 발간하는 간행물의 불어 교정을 봐 줬다고 한다. 또 블라베의 소개로 김규식은 프랑스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한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루이 마랭(1871~1960·애국장)을 비롯한 프랑스 주요 인사들과 교류하며 독립에 대한 공감대를 넓힐 수 있었다. 1921년 프랑스에서도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외국인 단체 ‘한국친우회’가 꾸려졌다. 블라베는 한국친우회 재무국장을 맡았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수석연구원을 지낸 김도형 박사는 22일 “블라베 부부는 한국에 친화적인 태도로 임시정부 파리위원부가 초반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열심히 도왔다”면서 “다만 프랑스 문서보관소 등에서도 그의 한국 독립운동 지원과 관련한 자료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2024-09-23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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