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이것이 아이디어다】 존 판던 지음/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은행이 더 위대할까, 연애가 더 나을까. 피임과 백신, 진화론, 하수도를 두고 위대한 순서대로 나열하라면? 명예와 희망을 두고 묻는다면, 어떤 게 더 대단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하면 아마도 ‘무슨 이따위 질문이 있나’이거나 ‘무슨 질문에 이리 일관성이 없나’라는 답문을 받게 될 것이다.방법은 이랬다. 먼저 대중과학저술가 필립 볼, 다윈진화론 전문가 페른 엘스턴 베이커, 행동과학 전문가 딜런 에번스, 영국 왕립철학연구소장 앤터니 오히어 등 학계 최고의 전문가 11명으로 심사위원단을 꾸렸다. 이들을 중심으로 아이디어 50개를 추리고, 웹사이트를 열어 대중의 의견을 물었다. 수만명이 참여해 순위 투표를 하는 과정을 거쳐 나온 책은 집단지성의 결과물로 이해해도 좋겠다. 그렇다면 50위는 무엇일까. ‘결혼’이다. 사회 안전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 결혼이 없었다면 성관계가 무한 경쟁의 대상으로 남아있을 테고, 결국 사회 전체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혼보다 위대한 것이 연애(33위), 연애보다 나은 것은 자아(23위)이다. 해방을 향한 갈망이거나, 개인을 더 앞세우는 현대인을 투영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역사 속에서 꽤 오랫동안 인간의 가장 고귀한 덕목으로 꼽혔던 ‘명예’가 45위인 반면, 기대감만 부풀리고 끝날지라도 ‘희망’은 11위이다. 희망을 품는다는 것 자체가 현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긍정적인 영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대중의 의견을 차곡차곡 쌓다보니 복지국가(41위)가 자본주의(42위)보다 조금 낫고, 마르크수주의(27위)보다 민주주의(14위)나 노예제 폐지(6위)가 더 위대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럼 1위는? 바로 ‘인터넷’이다. 오만방자한 사람들이 하늘에 닿기 위해 바벨탑을 쌓다가 신의 분노로 뿔뿔이 흩어진 뒤(구약성서 창세기), 다시 인터넷을 통해 인류가 하나로 묶였으니 엄청난 아이디어라고 할 만하다.
책은 아이디어를 역순으로 나열했지만, 책을 읽다보면 실상 순위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책이 가진 큰 의미는 ‘어떤 아이디어가 진정 위대한지 명확하게 가려냈다.’가 아니라, 인류가 가진 독창적인 아이디어의 근원과 변화, 현대사회에 미친 영향력을 음미하는 데 있다. 1만 6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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