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엔 ‘채찍’ 투자자 ‘보호’… 자본시장 대수술

기업엔 ‘채찍’ 투자자 ‘보호’… 자본시장 대수술

입력 2011-07-27 00:00
업데이트 2011-07-27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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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법 개정안 내용과 의미

26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정부가 금융위기 동안 미뤄 두었던 자본시장을 대수술했다는 의미가 크다. 대수술 이후 국내 자본시장은 빅뱅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우선 투자은행(IB) 자격 획득 여부에 의해 증권업계가 양극화되고, 대체거래소(ATS)가 도입될 경우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한국거래소 역시 독점적 권한을 내놓아야 한다. 그간 실권주를 통해 주식편법증여를 시도해 온 기업에는 채찍을 가하고 시세조종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은 향후 보호받는 효과도 기대된다. 하지만 벌써부터 일부 정책에 대한 현실성 문제가 지적되고 있으며 법안 처리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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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감시 거래소 ATS 자회사 설립 가능

금융위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ATS 설립을 포함시켜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자본시장 규모는 세계 10위 수준임에도 거래비용은 하위권에 머무는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 실제 ATS를 도입한 미국과 유럽의 주식 매매체결속도는 한국거래소보다 8배나 빠르다.

현재 미국 80여개, 유럽 20여개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총 120여개의 ATS가 운영 중이며 아시아에는 최근 홍콩, 일본, 호주, 싱가포르 등이 ATS를 도입했다.

ATS가 도입되면 주식투자자는 매매수수료가 좀 더 싼 곳에서 거래를 하면 된다. 같은 삼성전자 종목이라도 거래소에 따라 가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사려는 시도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단, 여러 ATS의 가격차를 이용한 초단타매매로 시세조종을 시도하는 경우 처벌을 받게 된다. 반면 매매체결 업무 외에 법인 청산이나 시장감시업무는 지금처럼 거래소가 담당하게 돼 매매체결을 놓고 경쟁에 참가한 참여자가 직접 시장을 감시하는 이해상충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또 공공성을 위해 ATS 지분을 개인의 경우 15%까지, 금융기업은 금융위의 허가를 받아 30%까지만 소유할 수 있도록 했음에도 한국거래소는 100%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로 ATS를 만들 수 있도록 해 형평성 논란도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한국거래소의 이해상충 부분은 충분한 보완장치를 마련할 것”이라면서 “이미 외국의 경우에도 거래소가 ATS 자회사를 만들었지만 다른 ATS들과 충분한 유효경쟁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IB 등장으로 증권업계 양극화 예상

또 IB에 배타적인 업무를 허용하면서 자기자본을 3조원 이상으로 끌어올리도록 유도한 점에서 업계는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로 나뉠 것으로 보인다.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대우, 삼성, 현대, 우리투자, 한국투자 등 상위 5개 증권사의 평균 자기자본이 2조원 중반대를 겨우 넘는다. 골드만삭스의 30분의1 수준이다. 그래도 이들은 자기자본을 확충해 IB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중소형 증권사는 시장을 다 빼앗길까 우려한다. IB 자격을 갖추면 인수·합병(M&A) 자금 대출, 기업 융자·보증, 비상장주식 내부 주문 집행이 허용된다. 무엇보다 연내 출범 예정인 헤지펀드에 대출할 수 있는 프라임브로커 업무가 가능해진다.

코스닥 기업들을 중심으로 그간 악용해 온 섀도 보팅은 2015년 폐지된다. 그간 정족수 미달로 주주총회가 무산되지 않게 하려고 예탁원은 예탁주식에 대한 의결권을 대리행사해 왔다. 대상자는 참석한 것으로 처리되지만, 표결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참석 주주들이 투표한 투표수의 비율대로 분할해 반영하는 것이 섀도 보팅이다.

그러나 예탁원의 의결권 행사는 대주주에 의한 기업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변질됐다. 예탁원은 발행회사의 주주도 아니고 실질주주의 대리인도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엔 실권주 임의배정 제한

시민단체의 고발로 불거진 에버랜드 편법 경영승계 논란을 계기로 유명해진 실권주에 대해서는 기업 이사회가 임의처리하도록 해 온 것도 제한키로 했다. 앞으로는 제3자에게 임의로 배정하던 것을 일반공모를 해 처리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이외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 주가연계증권(ELS)이나 장외파생상품을 이용해 시세를 조종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또 주식워런트(ELW)시장 교란의 주범이었던 초단타 매매(스캘핑)도 불공정거래로 분류돼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된다. 지금까지 불공정거래를 제재할 유일한 수단이던 형사처벌은 혐의가 인지되고서 재판 확정까지 2~3년이 걸려 규제망이 허술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외 1차 정보수령자에게서 정보를 얻은 2차 수령자가 이를 이용해도 과징금 부과 대상이 된다.

한편 이번 자본시장법의 입법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 문제를 두고 고심중인 국회의원들이 이 법안의 발목을 잡을 경우 내년에는 총선 등으로 더 통과가 힘들어질 것”이라면서 “특히 IB가 헤지펀드를 지원할 수 있는 부분에서 헤지펀드로 불거진 미국 금융위기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는 묘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주·임주형기자 kdlrudwn@seoul.co.kr
2011-07-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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