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저축銀 피해자 구제 합의…10년만에 원칙 허무나정부ㆍ금융권 “전형적 포퓰리즘”
국회 정무위원회가 저축은행 피해구제 특별법을 처리하는 쪽으로 기울자 정부와 금융권에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정무위가 9일 오전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통과시킨 특별법은 현행법상 예금자보호를 받지 못하는 5천만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채권 투자자의 피해액 일부를 보상하는 게 뼈대다.
정무위는 피해자 구제에 정부 출연금과 부실 책임자의 과태료, 과징금, 벌금 등 국가 재정을 끌어다 쓸 생각이었다. 그러나 논의 과정에서 이를 제외하는 대신 예금보험기금으로 조성한 ‘저축은행 특별계정’에서 재원을 마련키로 의견을 모았다.
구제 대상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문을 닫은 18개 저축은행의 5천만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채 투자자 8만2천391명이다. 구제 규모는 예금 5천만원 초과분의 55%와 부실판매책임이 인정되는 후순위채 투자금의 55% 등 1천25억원이다.
문제는 정무위가 저축은행 피해자에게 지원하겠다는 예보기금은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조성한 민간 재원이라는 점이다.
결국, 수많은 은행 예금자와 보험 가입자가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쌓아 둔 예보기금을 당사자의 동의조차 받지 않고 제멋대로 끌어다 저축은행 피해자에게 쏟아붓는 셈이다.
애초 영업정지 저축은행의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 원리를 허무는 꼴이라는 지적마저 제기된다.
누구든 원리금 합계 5천만원까지만 보장받는 부분 예금보호제도는 외환위기 때 잠시 예외가 허용됐다가 2002년 1월 재도입돼 10년간 지켜온 원칙이다. 게다가 후순위채는 외환위기 당시에도 ‘투자자 책임주의’에 따라 손실분을 메워주지 않았다.
예보기금에서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목적으로 마련한 특별계정의 돈을 빼오는 게 계정의 도입 취지를 무색게 한다는 의견도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할 예금보장제도의 근본을 허물고, 그것도 모자라 불특정 다수의 사적재산권을 침해하는 법안이어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에서는 정부의 완강한 반대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저축은행 피해자를 지원하려는 정무위 소속 의원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오는 4월 총선에서 여ㆍ야 격전지로 떠오른 부산 지역을 비롯해 영업정지 저축은행 피해자가 몰린 곳에 지역구 기반을 둔 국회의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무위원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둘러대지만, 본질은 ‘포퓰리즘’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금배지’에 눈이 멀어 금융의 핵심인 원칙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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