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유통법 통과되면...’국부유출’vs.’호갱방지’

단말기 유통법 통과되면...’국부유출’vs.’호갱방지’

입력 2013-11-18 00:00
수정 2013-11-1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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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사 “해외 경쟁력 악화…제2의 팬택 사태 우려” 이통사 “이용자 차별 막으려면 제조사 장려금도 규제 필요”

국회에 계류 중인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안’(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안)을 놓고 스마트폰 제조사와 이동통신사 사이의 신경전이 치열하다.

18일 스마트폰 제조업계와 이동통신업계에 따르면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은 무분별한 보조금 지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동통신사의 보조금 외에 제조사의 장려금도 규제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에 대해 삼성전자를 비롯한 제조사들은 법안 통과가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내 놓고 있다. 애플 같은 외국 회사와의 해외 경쟁에 밀려 국부가 유출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에 대해 이동통신사들은 제조사의 장려금 규제가 오히려 늦었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정부가 이동통신사의 보조금만 규제했지만 시장 혼탁에는 제조사들이 은밀하게 시장에 풀어놓는 장려금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 단말기 유통법, 제조사 해외 경쟁력 저하시킬까

제조사들은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안이 통과돼 시행되면 단말기 판매량과 판매장려금(보조금) 규모, 출고가 등을 방통위에 제출해야 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 자료가 영업비밀이라 공개되면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것이다.

제조사들은 국내 시장뿐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미국과 중국, 일본 업체들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영업비밀이 유출되면 국부의 손실도 입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해외 경쟁사에 가격 등 마케팅 전략이 노출될 수 있고 해외 통신사와 협상할 때 국내의 판매장려금과 동등한 수준을 요구하는 등 교섭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논리다.

또 제조사의 판매장려금을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일은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어떤 국가에서도 없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에 대해 이동통신사들은 보조금 과열 경쟁으로 인한 시장혼란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통사 관계자는 “해외에서 법으로 보조금을 규제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은 시장이 자율적으로 정상적인 경쟁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시장이 자율 기능을 상실했다면 법적 규제를 동원해 이를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방통위가 제조사로부터 제출받는 것은 보조금과 관련된 일부 정보”라며 “자료제출을 국부유출로까지 연결짓는 것은 지나친 엄살”아라고 일축했다.

◇ 보조금 대란 누가 촉발하나

정부의 보조금 규제는 비슷한 시기에 소비자에 따라 스마트폰 구입가격이 수십만원씩 차이가 나는 ‘소비자 차별 행위’를 막는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다.

어수룩한 고객을 뜻하는 이른바 ‘호갱(호구+고객)’을 방지해 시장 교란을 막고 제품 구입 과정에서의 발생하는 소비자들의 불신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안은 기본적으로 제조사가 이 같은 시장 교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통사 관계자 역시 “제조사들이 출고가 자체를 인하하지 않고 장려금을 시장에 풀어 재고를 처리해왔다”며 “특히 최근 이통시장 보조금 과열은 제조사발 과다 장려금이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동통신사들은 지난달 초 ‘하이마트 갤럭시S4 17만원’으로 대표되는 전자제품 양판점의 보조금 과열 경쟁을 이끌었던 것이 제조사의 장려금 투입에서 시작됐다고 의심하고 있다.

또 지난달 말 특정 제조사의 최신 단말기의 가격이 갑자기 낮아진 사례도 역시 제조사 장려금이 영향을 줬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제조사 관계자는 “시장을 교란시킬 정도로 장려금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며 “장려금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이동통신사의 제안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 보조금 규제가 시장 위축…”’제2의 팬택’ 우려”

제조사들은 정부의 보조금(장려금) 규제가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침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보조금 규제가 심하면 내수 시장의 스마트폰 판매가 줄어들어 국내 제조사의 경영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예로 제시되는 것이 보조금 규제가 심했던 올해 경영 사정이 안 좋아진 팬택의 사례다. 시장의 빙하기가 소규모 이동통신·스마트폰 판매점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시장 냉각이 내수 시장 의존도가 큰 팬택의 경영 상황을 어렵게 했다”며 “보조금 규제가 강화되면 휴대전화 시장 침체로 이어져 ‘제조사-부품사-유통사’로 연결되는 정보기술(IT)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팬택의 경영 악화에는 국내 시장 침체 외에도 마케팅 자금 부족과 특정 사업자로의 시장 쏠림 현상 등 복합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경우 휴대전화의 국내 매출 비중은 5% 안팎 수준으로 크지 않다는 점도 고려할 만하다.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시장의 과열이 소비자 입장에서 꼭 좋은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며 “오히려 빈번한 단말기 교체가 자원 낭비와 불필요한 과소비를 조장하는 결과를 낳은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 보조금 규제하면 단말기 가격 싸질까

제조사와 이동통신사가 명확한 시각 차이를 보이는 또다른 부분은 국내 단말기 판매 가격의 수준에 있다.

이동통신사들은 제조사들이 국내에서 판매하는 단말기 가격이 애초에 높게 책정돼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작년 한국의 휴대전화 평균 판매가(ASP·Average selling price)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415달러(약 46만1천원)을 기록해 전 세계 평균인 166달러(약 18만5천원)보다 2.5배나 높았다.

조만간 출시를 앞둔 구글의 레퍼런스(기준)폰 넥서스5의 출고가가 프리미엄폰의 절반 수준인 45만9천800원인 것 역시 국내 스마트폰 제조사의 스마트폰 출고가에 거품이 낀 것 아니냐는 논란을 낳고 있다.

제조사들은 그동안 신제품의 출고가 인하를 꺼리면서 가격 인하 여력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 실제로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스마트폰 가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제조사와 이동통신사는 엇갈린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제조사 관계자는 “법이 제정되면 스마트폰의 출고가가 상향 평준화될 수 있다”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지난 3월 시장이 안정화되자 국내 제조사들이 잇따라 출고가를 인하한 바 있다”며 “법 통과가 스마트폰 출고가 인하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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