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갱신은 허용”…업계 “갱신만 안내하고 끊으란 거냐”
금융감독원이 전화 권유 마케팅(TM)을 전면 금지한 첫 날인 27일, 일선에선 큰 혼란과 불만이 일었다.카드사의 정보유출에 따른 책임론으로 금감원이 궁지에 몰리자 TM 직원을 희생양 삼아 실업자로 내몰았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특히 지점망을 갖춘 은행과 달리 TM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보험사와 카드사에는 이날 ‘초비상’이 걸렸다.
업계에 따르면 흥국화재(20.9%)·동부화재(11.2%)·KB생명(27.4%)·신한생명(18.0%)·AIA생명(13.7%) 등은 보험료 수입의 10% 이상을 TM에 의존한다.
흥국화재 관계자는 “회사가 비상”이라며 “대책을 강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흥국화재는 6개 온라인 손해보험사를 제외하면 TM 의존도가 가장 높은 곳이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손해보험사 관계자도 “TM 설계사로선 생존이 달린 문제”라며 “매우 갑작스러운 조치라 전혀 준비된 게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손보협회 관계자도 “회사마다 입장이 다르지만, 영업에 지장이 있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생보협회 관계자도 “금감원의 대처가 너무 갑자기 나와 회원사들이 당황스러워한다”며 “TM 비중이 높은 회사는 영업에 큰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 조치가 뚜렷한 법적 근거 없이 이뤄졌다는 점이 업계로선 불만이다. 일부 카드사의 잘못 때문에 다른 모든 금융회사가 ‘도매금’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법적인 근거 없이 갑작스럽게 규제하는 것”이라며 “실적 타격은 물론 조직 운영에 큰 차질이 예상돼 재검토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카드·할부금융사·저축은행 사이에서도 금감원이 섣불리 움직였다는 반응이 많다. 각 회사의 TM 인력 운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 조치라는 것이다.
여신금융협회 관계자는 “회사마다 TM 인력이 대략 수천명씩 된다”며 “이들을 어떻게 할지 난감해 망연자실한 모습”이라고 전했다.
한 전업계 카드사 관계자는 “TM을 못 하게 만들면 카드사들은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라며 “금지 기간이 연장되면 상황이 심각해진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도 “대출모집인 영업 자체를 모두 중단했기 때문에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금감원의 조치가 명확하지 않고 두루뭉술해 일선에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반응도 나온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세부적 지침과 범위가 없는 상태”라며 “대출 만기가 돼도 알려주지 못한다는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예금·대출 만기는 고객이 모르고 지나칠 수 있어 TM 조직이나 영업점 직원이 전화를 걸어 알려주는데, 이것도 금지 대상인가”라고 물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은행 영업점에서는 펀드·카드 고객의 만족도 따위를 조사하는데, 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앞서 조영제 금감원 부원장은 지난 24일 금융사 임원들을 불러 전화 대출·영업을 3월까지 금지하고, 상황에 따라 연장하겠다는 방침을 전달했다.
금융당국은 금융회사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날 보험·카드사·캐피탈 임원을 불러 협조를 당부하면서 전화를 통한 갱신 영업은 허용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업계에선 ‘TM 직원이 갱신 업무만 안내하고 바로 끊으라’는 당국의 지시가 현실에 맞지 않고 기준도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갱신을 안내하면서 다른 상품도 안내하면 어떻게 적발할 건가”라며 “당국이 여론의 눈치만 살펴 실효성 없는 대책을 남발한다”고 꼬집었다.
다른 보험사 관계자도 “매월 갱신·실효 계약이 업데이트돼 이를 전화로 안내하고 있는데, 이때 다른 상품 얘기만 꺼내도 지시 위반인가”라고 되물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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