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에 경제관료 출신 범람…법·제도 무력화 우려

로펌에 경제관료 출신 범람…법·제도 무력화 우려

입력 2014-06-01 00:00
수정 2014-06-0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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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업·금융 관련 소송 등이 크게 늘어나면서 경제 관료 출신들도 판·검사 못지않은 대우를 받으며 로펌에 영입되고 있다.

이들은 10년 이상 공직 생활을 통해 쌓은 전문 지식과 함께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해 대 정부 로비 창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법과 제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따라 퇴직 후 일정 기간 공무원의 취업이 제한돼 있기는 하지만 퇴직 관료들에 대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수억원 받고 사건 ‘깊숙이’ 개입

국세청에서 고위직을 지낸 A씨는 2011년 국내 한 대형 로펌에 고용돼 현재 기업에 대해 조세와 관련된 일반 자문과 사전 세무 진단 등을 해주고 있다.

B씨도 2011년 공정거래위원회 고위직을 지낸 이후 또 다른 대형 로펌 들어가 공정거래와 관련된 전반적 자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처럼 국세청, 공정위, 금감원 출신들은 경제 부처 출신 중에서도 로펌에서 서로 ‘모셔갈’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들이 몸담았던 기관이 기업에 대해 행사하는 막강한 권력 때문이다.

국세청이 막대한 세금을 추징하고,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하고, 금융당국이 각종 인·허가를 내주지 않거나 취소하면 기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어 이들에 대한 기업의 수요는 상당하다.

이들은 오랫동안 각 부처에서 기업에 세금이나 과징금, 제재를 부과해 왔다. 그만큼 내부 시스템을 잘 알고, 무엇보다 제재의 맹점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방패막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이들 퇴직 관료는 로펌으로부터 수억원을 받고 해당 부처에서 쌓은 인맥을 활용해 기업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깊숙이 개입한다.

경제 관련 부처 한 관계자는 “로펌에 가면 현직에 있을 때보다 3배 이상의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로펌으로서도 퇴직 관료들이 그만큼의 효용 가치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퇴직 관료들의 가장 큰 효용 가치는 축적된 전문 지식과 함께 인적 네트워크로 여겨진다. 기업들로서는 담당 사무관을 만나기도 어렵지만, 이들은 담당 과장 이상의 간부들을 한 번의 전화로 접촉할 수 있다.

또 해당 부처 선·후배들과 수시로 접촉하며 관련 정보를 수집해 해당 기업에 자문한다. 부처에서 기업들에 부과하는 제재 관련 소송을 수주하기도 한다.

◇”소송가면 진다” 부처 압박도…법·제도 무력화 우려

이들은 해당 부처에서 쌓아 온 인맥을 통한 로비나 때로는 압력 등으로 정부가 특정 기업에 대해 부과하려는 제재를 약화시킨다. 이들의 활동이 법과 제도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들은 추징 세금을 낮게 만들기도 하고, 과징금을 대폭 삭감시키는 등 제재를 낮출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고위급 퇴직자의 경우 여전히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 공무원 역시 퇴직 신분이라 해도 자신이 오랫동안 모셨던 전직 상관의 말을 무시할 수 없다.

부처 한 관계자는 “퇴직 관료들이 전문성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소송가서 진다’고 말하면 제재를 세게 가하려고 하다가도 담당자 입장에서는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퇴직 관료들과 부처간에는 ‘이상한’ 연결 고리도 존재한다. 해당 부처에서 기업에 제재를 가하면 이를 퇴직 관료들이 수임해 소송을 통해 기업을 구제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 퇴직 관료들이 맡은 소송에서 정부가 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경제 부처는 이에 대해 기업에 대해 제재 등을 내릴 때에는 한 사람의 결정만으로 하는 것이 아닌데다 위원회의 절반가량이 외부 인사로 채워져 퇴직 관료들이 압력을 넣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부처 관계자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사건 수임을 하면 심증적으로 전관예우가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하듯이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부처 출신 인사도 실제 로펌에 가서 맡은 사건이 잘 되는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로펌 측도 경제 관료 출신들을 로비 창구로 활용하기 위해 영입한다는 시각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출신 부처에 대한 로비나 정보 수집이 아니라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변호사들이 전문 지식이 부족한 세무나 경쟁 관련 분야를 관련 분야의 공무원 출신들이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법률 시장이 개장돼 외국 법무법인들과의 경쟁을 위해서도 전문가들이 필요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퇴직 공무원의 현직 접촉 투명성 강화”

외국의 경우에 공무원의 민간 기업 취업이 엄격히 제한돼 있다.

독일은 공무원 퇴직 후 3년간 업무 유관 기관에 재취업을 하지 못하고, 퇴직 후에는 모든 영리활동을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프랑스는 5년간 유관 기관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를 어길 시 공무원 연금을 박탈당하거나 삭감한다. 2년까지 실형을 받을 수도 있다.

미국은 전직 공무원이 재취업을 한 뒤 퇴직 전 담당했던 업무와 관련해 대정부 활동을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재무장관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는 지난해 9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재무장관 역임 이후 월가에서 고액 사례를 받고 금융회사를 위해 자문에 응한 점이 문제가 돼 낙마하기도 했다.

한국은 2011년 퇴직 공무원의 취업 제한을 강화한 공직자윤리법이 시행되면서 퇴직 관료들의 로펌행이 크게 차단됐다.

4급 이상 공무원뿐만 아니라 공직유관기관 단체 직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자본금이 50억원 이상이면서 연간 외형거래액이 150억원 이상인 사기업체는 취업할 수 없다. 로펌도 포함된다.

세월호 참사이후 취업제한 기한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취업을 제한하는 기업의 수도 확대하는 방안이 강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법 역시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는 만큼 퇴직 관료들에 대한 활동을 투명하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로펌에 간 공직자 출신은 어떤 형태로든 자신이 있었던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 있는 후배들과 접촉을 할 것”이라며 “누구와 어떤 접촉을 했는지를 외부 다른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하는 투명성 강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도 한국형 로비스트법을 논의할 때가 됐다”며 “공직에 있는 사람이나 공공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에 대해 추적장치를 둬서 접촉의 투명성을 논의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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