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판중인 디젤차 대부분 기준 충족 못해 ‘비상’
“2017년 9월 이전까지 디젤차가 실제 도로에서 주행할 때 내뿜는 질소산화물(NOⅹ) 배출량을 최대한 줄여라”국내에서 유로6 기준 디젤차를 판매 중인 모든 자동차업체들이 최근 이같은 공통된 ‘과제’를 받아들고 기술 개발에 머리를 싸맨 채 ‘시간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는 내년 9월부터 국내에서 판매되는 디젤차는 고속도로, 도심 등 실제 도로 조건에서 배출하는 질소산화물이 현행 허용기준(0.08g/㎞·실험실 조건)의 2.1배를 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디젤차 배기가스에서 나오는 질소산화물은 미세먼지를 발생시키는 인체 유해물질이다. 이 기준은 2020년 1월부터는 1.5배로 강화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작년 10월 이 기준을 마련했으며 한·EU FTA에 따라 우리나라 환경부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내년 9월부터 국내와 유럽에서 판매가 금지된다.
◇ 시판 중인 디젤차 대부분 기준 충족 못해
19일 정부와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재 시판 중인 디젤차 대부분은 현 상태로는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환경부가 국내외 주요 자동차업체 대표 차종 20종을 대상으로 실내 인증기준 대비 실외 도로주행시험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를 보면, 기준을 충족한 차량은 ‘BMW 520d’ 1개 차종 뿐이었다.
정부가 조사한 차량 20종 가운데 2017년 9월 이후에도 현 상태 그대로 판매가 가능한 안정권에 들어 있는 차량은 BMW 520d 하나 뿐인 셈이다.
반면 한국닛산의 ‘캐시카이’와 르노삼성의 ‘QM3’는 질소산화물 배출이 심각한 ‘더티 디젤’ 차량으로 지목됐다. 캐시카이와 QM3는 실도로 주행 때 실내보다 각각 20.8배, 17.0배 많은 질소산화물을 내뿜는 것으로 나타나 최근 배기가스 저감장치 임의조작으로 검찰에 고발 당하거나 개선 대책을 마련하라는 ‘경고’를 받았다.
일반인들이 이름만 들으면 아는 다른 자동차 메이커의 디젤차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재규어랜드로버의 레인지로버·이보크, 폴크스바겐 투아렉·제타·골프·비틀, 포르쉐 카이엔, 현대차 쏘나타, 기아차 스포티지, 아우디 A3, 볼보 XC60D4, FCA 지프·그랜드체로키, FMK 마세라티 기블리, 한국GM 트랙스, 푸조 3008, 벤츠 E220d, 포드 포커스, 쌍용차 티볼리 등 17개 차종은 실도로 주행시 실내 인증기준보다 1.6∼10.8배 많은 질소산화물을 배출했다.
이들 차량은 2017년 9월 이후 정부로부터 판매 인증을 받으려면 실도로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한 차량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 배기가스 저감…비용·배출량 감소 ‘두 마리 토끼’ 잡아라
배기가스를 저감하는 방식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엔진에서 연료가 최대한 완전 연소되도록 해 오염물질의 배출을 줄이거나, 특수 장치를 장착해 배출된 오염물질을 환경에 무해한 물질로 바꾸는 것이다.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강화된 환경규제에 맞게 대폭 줄이기 위해 가장 손쉬운 방법은 당연히 배기가스 저감 장치를 장착하는 것이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단기적으로는 특수장치를 장착하되, 장기적으로는 엔진과 트렌스미션을 비롯해 아예 새로운 차를 만들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단기적 해법과 관련, 디젤차에 장착할 수 있는 특수장치로는 배기가스 재순환 장치(EGR), 디젤 분진 필터(DPF), 희박질소 촉매 장치(LNT), 선택적 환원촉매장치(SCR) 등이 있다.
특히 이 중에서 SCR가 질소산화물 저감 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져 고가 브랜드의 프리미엄 차량이나 고배기량 차량을 위주로 SCR 장착이 확산하는 추세다. 환경부 조사에서 유일하게 기준치를 충족한 6천만원 후반대의 BMW 520d도 DPF, LNT에다 SCR까지 추가로 장착됐다.
그러나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장착하면 추가 비용이 발생해 자연히 차값이 비싸진다. 질소산화물 저감에 가장 효과적인 SCR는 LNT에 비해 4∼5배가량 가격이 비싸다. 디젤차 가격이 올라가면 가솔린차, 하이브리드차등과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또, 그나마 저감 장치를 달아도 2년 정도 지나면 기능이 떨어지고 5년 후에는 오염물질을 그대로 내뿜을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배기가스 저감장치가 추가로 장착되면 차의 성능과 연비를 떨어뜨릴 수 있고, 차량 디자인에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동차회사들은 단순한 SCR 장치 부착 같은 손쉬운 해법은 뒤로 하고, 디젤차 가격 인상을 최대한 억제하면서도 ‘디젤차 = 고연비’ 강점은 살리고 이산화질소 배출은 줄이는 최적의 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다.
◇ 우리나라는 디젤이 대세…“규제 계기 시장 판도 변할 수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디젤차 판매 비중이 지난해 기준 44.7%에 달할 정도로 디젤이 대세다. 따라서 내년 9월까지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업체는 당장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현대기아차는 대부분의 차종에서 디젤 모델을 내놓고 있고, 특히 투싼, 스포티지, 싼타페, 쏘렌토, 모하비, 맥스크루즈, 베라크루즈, 카니발 등 SUV는 국내 판매 차량의 99∼100%가 디젤이다. 올해 1∼4월 현대기아차가 국내에서 판매한 차량의 42.8%가 디젤이다.
수입차 브랜드 1, 2위를 다투는 BMW 역시 국내 전체 판매량의 약 80%가 디젤이고 메르세데스-벤츠도 60∼70%가 디젤이다.
그러나 문제는 가격, 연비, 성능, 환경 기준을 두루 충족하는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폴크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눈속임도 기술 개발 속도가 환경 규제를 따라가지 못하는 조급한 상황에서 나왔다.
국내 자동차업체 관계자는 “질소산화물 배출을 줄이려면 파워트레인도 향상시켜야 하고, 모든 차에 SCR를장착할 수는 없으니 LNT 성능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쓸 수도 있을 텐데 시간이 촉박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에선 이번 환경규제 강화를 계기로 디젤차가 대세인 국내 자동차시장의 판도가 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노르웨이, 프랑스, 덴마크 등 유럽 국가에서는 환경규제 강화를 계기로 디젤차 비중이 급감했다.
또 미국에서는 환경규제 여파로 폴크스바겐 등 약 20개의 디젤차 모델의 판매가 중단됐고, 국내에서도 최근 일부 자동차 업체들이 디젤 모델의 출시 계획을 연기하거나 철회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노하우가 많이 쌓인 일부 업체들은 내년 9월까지 강화된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있겠지만 쉽지 않은 업체들도 많을 것이고 자연히 걸러지는 디젤 차종이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앞으로 자동차 시장에서 결국 디젤차는 위축될 수밖에 없고 가솔린차, 플러그인하이브리드 등의 친환경차가 대세를 이룰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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