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카라 사태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시론] 카라 사태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입력 2011-02-08 00:00
업데이트 2011-02-08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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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의 한 지방에 다녀온 한 선배가 불쑥 걸그룹 카라 얘기를 꺼냈다. 카라 사태에 대해 국내에서는 심지어 제2의 한류 자체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며 위기 운운하는데 과연 일본 내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는 것이다. 동행한 시골 가이드에게 카라 위기에 대해 묻자, 의외로 시큰둥하더라는 것이다. “그런 건 연예 관계자들이나 기획사들 얘기고, 우리는 그저 카라가 보고 싶을 뿐”이라고 하더란다. 사실 언론이 호들갑을 떨며 당장이라도 카라가 해체될 것처럼 떠벌리고, 또 그것이 마치 이제 가까스로 새로 지펴놓은 제2의 한류에 찬물이라도 끼얹을 것처럼 겁을 잔뜩 주었지만, 실제 일본에서 대중들이 느끼는 체감은 사뭇 다르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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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카라 사태가 처음 불거져 나왔을 때만 해도 이거 또 ‘동방신기’ 사태의 재판인가 했을 것이다. 물론 계약 부분이 핵심적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차츰 진행되는 상황은 카라 멤버 본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부모들이나 기획사들, 심지어 협회들이 더 목소리를 높이는 등 이권 다툼이 사실상의 쟁점으로 부상했다.

카라 멤버들도 물론 허탈감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각종 예능을 포함한 살인적인 방송일정에 일본 활동을 더불어 하고, 각종 행사까지 뛰는 건 엄청난 강도의 노동이었을 테니까.그런 고강도 노동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돈이 몇 푼 안 된다는 현실은 누구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인지상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라 멤버 본인들은 함께하고 싶다는 게 공통된 뜻이었다. 카라 본인들이 원하고, 대중들도 원하고, 한류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일본 대중들까지 원하는 이 온전한 5인 체제의 카라는 애초부터 갈라서려 해도 그럴 수 없는 운명이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카라는 대중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대중가수들이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원치 않는 선택은 카라의 자멸을 의미한다. 그 누가 그걸 선택할 것인가.

물론 카라 사태가 내놓은 문제 제기는 의미 있는 것들이다. 즉, 한 아이돌 그룹의 성패가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류, 나아가 국가 브랜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잘 키워놓고도 잘못하면 남 좋은 일만 시켜줄 수 있는 국내 연예계의 매니지먼트 시스템도 법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어떤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가수를 키우기까지의 투자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에 막상 가수가 성공하고 나면 기획사 입장과 가수의 입장이 충돌할 수 있는 여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노래로 얻는 수익이 가수 본인에게 돌아갈 수 있는 유통구조다. 카라 사태는 여러모로 혼돈을 준 게 사실이지만, 국내 연예계의 체질 개선을 위해서도 이런 혼돈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고통이 있어야 고쳐질 가능성도 생기는 것이다.

문제 제기를 했던 카라 3인은 현재 소속사와 ‘5명의 카라가 함께한다.’는 원칙에 합의하고 다시 활동에 들어간 상태다. 다행스러운 일이고 올바른 결정이다. 물론 해결된 것은 별로 없어 보인다. 여전히 그녀들 앞에는 살인적인 스케줄이 놓여져 있을 것이고, 체감할 수 있는 수익은 충분하다고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연예 산업 시스템에 문제 제기를 했다고 해서 그들 자신이 그 열매를 얻기는 쉽지 않다는 게 현실이다. 다만 이런 문제 제기들이 숨겨지지 않고 자꾸 밖으로 드러나고 공론화되면서 가까운 미래에 훨씬 나은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따라서 이런 문제 제기를 좀 더 정확하고 발전적으로 공론화시킬 언론의 기능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추측성 기사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언론의 의제 기능은 발휘되기 어렵다. 이것은 문제 제기가 아무 소용없다는 절망감을 안겨 연예계를 무력감에 빠뜨릴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사태 이후 카라에 대한 일본 대중들의 열광은 더 깊어졌다고 한다. 자칫 그 열광 속에 카라가 제기했던 문제 제기가 그저 묻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숙제는 여전히 우리 손에 남아 있다.
2011-02-0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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