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서울의 역사는 왜 2000년 인가/신형식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화여대 명예교수

[시론] 서울의 역사는 왜 2000년 인가/신형식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화여대 명예교수

입력 2011-05-20 00:00
수정 2011-05-20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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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민들이 서울을 한성백제 500년과 조선왕조 500년을 합친 1000년의 역사로만 기억하고 있다. 앞의 두 시기 외에 서울은 분명히 수도가 아니었는데 왜 2000년 역사라고 설명하고 있는가를 알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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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식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화여대 명예교수
신형식 서울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화여대 명예교수
서울역사 2000년의 제1단계는 백제의 한성시대(BC18~475)였다. 백제는 21명의 왕이 존재하면서 한강유역의 유리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백제, 고구려, 신라 3국 중 가장 먼저 고대 국가를 완성하였다. 이러한 정치적 조건을 기반으로 근초고왕(346~375)은 고구려를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패사시켰으며, 요서지방에 진출하여 역사상 첫번째 해외진출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백제는 475년 서울을 웅진(공주)으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 장수왕의 한성 정벌은 고국원왕의 보복을 앞세웠지만, 한강유역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 백제는 수도를 남으로 옮겼지만, 한강유역을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었고 신라와 협조하여 한강유역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6세기에 이르러 신라의 법흥왕과 진흥왕은 백제와의 군사협력을 파기하고 단독으로 한강 북부를 장악한다. 여기서 서울 2000년 역사의 제2단계가 시작된다. 한강유역은 한반도의 허리로서 지리적 환경이나 서해로 향한 관문이 되는 유리한 조건을 갖춘 곳이어서 “오래 지닌 자는 번성하고 통일의 대업을 이룰 수 있지만, 이를 잃는 쪽은 쇠약 혹은 패멸한다.”는 이병도 박사의 지적을 떠올릴 수 있다.

한강유역의 확보로 신라는 3국 중 최강국임을 과시할 수 있었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결국 신라가 이 일대에 설치한 한주(한산주)는 통일신라의 정치 안정과 문화 개발에 바탕이 되었다. 더구나 826년(경덕왕 18) 황해도 남부일대(금천~재령 남부)에 장성까지 쌓았다. 북방진출의 강한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낙동강과 한강을 하나로 묶어 경주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서울역사 2000년의 제3단계는 고려시대의 500년간(918~1392)이다. 신라 말부터 한반도에는 사회적 혼란 속에서 호족들이 난립하였고, 변경변혁설의 시각에서 서울 북방에는 새로운 물결이 일고 있었다. 성종 2년(982)의 12목에는 황해도 지역의 황주와 해주, 한강 북부의 양주와 광주가 포함되었으며, 현종 9년(1018)의 5도 양계에는 독자적으로 한강유역에 양광도가 설치되면서 점차 비중이 커졌다. 현종 2년(1011)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 함락을 경험한 고려는 예성강과 임진강을 넘어선 서울지역(양주)을 제2의 수도로 생각했다.

서울지역 남경론은 숙종 1년(1096)에 김위제(金謂磾)의 ‘남경천도론’으로 나타났다. 그는 왕에게 “건국 후 160여년에 목멱벌(남경)에 도읍한다.”는 도선의 비기를 설명하였다. 특히 개경·서경·남경의 3경을 저울로 비교하여 개경은 저울대(衡), 서경은 저울의 접시(極器)이지만, 남경은 저울추(錘:머리)가 된다고 했다. 서울지역은 탁월한 자연환경 외에 북으로 예성강과 임진강의 보호를 받는 군사적 위치, 육상 및 해상의 호조건, 그리고 경제적 여건이 컸기 때문에 숙종의 남경 궁궐 조성(1104) 이후 충렬왕의 한양부 개칭(1304)이나 공민왕의 한양천도론(1356)이 나타날 수 있었다. 이처럼 고려시대 서울지역은 단순히 수도 개경에 보완적인 명칭상의 제2수도가 아니었다. 정치·경제·군사·통상으로 실질적인 수도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남경 없는 개경은 있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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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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