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음주방송/이도운 논설위원

[씨줄날줄] 음주방송/이도운 논설위원

입력 2011-10-10 00:00
업데이트 2011-10-1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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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목 없습니다. 청취자들께서 느끼셨을 배신감을 생각하면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변명의 여지도 없습니다. 이대로 물러나겠습니다. 다시는 그 역겨운 소리를 듣지 않으셔도 됩니다. 용서가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2003년 7월 31일 MBC FM ‘음악 살롱’의 진행자인 DJ 이종환이 시청자 게시판에 남긴 글이다. 그는 전날 오전 9시에 시작된 프로그램에서 술이 덜 깬 듯 잠긴 목소리로 방송을 진행, 시청자들의 거센 비난을 받게 되자 곧바로 물러났다. 지난해 6월 23일에는 SBS FM ‘두 시 탈출 컬투쇼’를 진행하는 정찬우가 음주 생방송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월드컵 경기가 열리던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출장 중이었던 정찬우는 공동진행자 김태균이 전화로 연결하자 술이 덜 깬 목소리로 횡설수설하며 욕설까지 해댔다. 파문이 일자 제작진은 곧바로 사과했다. 정찬우도 26일과 27일 연달아 방송에서 사과를 했다. 결국 이 프로그램은 두 달 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음주 방송을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이 프로그램의 높은 청취율 때문인지 정찬우는 아직까지 진행자로 남아 있다.

얼굴 없이 목소리만 나오는 라디오의 경우 음주 사실을 감추는 데 ‘유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음주 방송이 이따금씩 나온다. 그러나 TV라고 음주 방송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08년 1월 31일 MBC 스포츠 뉴스를 진행하던 임경진 아나운서가 평소와 달리 혀가 꼬이는 듯한 부정확한 발음을 보이자 음주 방송 의혹이 제기됐다. 임 아나운서는 마침내 술을 마시고 방송한 사실을 시인했고, 회사는 감봉 1개월의 처분을 내렸다. 임 아나운서는 결국 그해 9월에 사직했다.

한나라당의 신지호 의원이 지난 6일 밤 술을 마신 뒤 생방송 토론회에 참석해 말썽이 됐다.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의 대변인을 맡았던 신 의원은 출입기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폭탄주를 여러 잔 마신 것으로 보도됐다. 그는 말리는 기자들에게 “술을 마시면 말을 더 잘한다.”고 말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신 의원은 결국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직을 사퇴했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술을 먹고 저지르는 실수에 관대해 왔다. 그런 분위기가 법원의 판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최근에는 음주에 대한 무조건적인 관대함은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정치권은 아직 그런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신 의원의 음주 방송은 결국 한나라당의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빨간 신호등인지 모른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2011-10-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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