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 렌즈/홍순영
누가 밤새 저 감나무 잎새마다 카메라를 매달아 놓았나
바람 흔들어대도 연방 셔터 눌러대는,
설핏 비친 겹벚꽃 겨드랑이 속살과
‘피아노 모텔’ 나서는 연인, 재빨리 줌-인해 찍고는
구름의 느릿한 발걸음과
바람의 뒤통수도 한 컷
쓰레기봉투 후벼놓고 지하계단으로 잠적한 고양이 꼬리,
고층 베란다에서 까치발 들고 새를 부르는 여자까지
대롱대롱 담고 있는 물방울 렌즈
새 한 마리 햇살 쪼며 날아오르자
수십 장의 풍경들, 사방으로 흩어지고
배터리 잃어가던 물방울 카메라
서둘러 감나무의 속사정, 연사로 찍어댄다
얼결에 빨려든 하늘
감나무의 배경이 시퍼렇다
2012-02-1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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