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진주만 & 강정마을/구본영 논설위원

[씨줄날줄] 진주만 & 강정마을/구본영 논설위원

입력 2012-02-24 00:00
수정 2012-02-24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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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처음 본 강정마을은 참 한적했다. 관광객들로 흥청거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선입견은 여지없이 깨졌다.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단체들이 내건 현수막만 펄럭이고 있었다. “강정을 평화생명의 마을로”, “구럼비가 통곡한다”….

722가구 1800여명의 주민이 사는 마을이 고즈넉해 보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군항 건설을 반대하는 원정 시위가 잦아든 탓만은 아니었다. 노령인구에 비해 아이들이 유달리 적으니 마을이 한산할 수밖에 없을 게다. 실제로 이곳 강정초교는 근래 연간 취학 아동이 10명도 안돼 분교로 전락할 위기에 몰렸다고 한다. 2007년 해군기지 유치 여론조사에서 주민 56%가 찬성표를 던진 데는 젊은 인구의 유입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을 법하다.

정물화처럼 조용한 해안을 걸으면서 십수년 전 하와이 여행 때가 생각났다. 당시 기억의 편린들이 지금도 뇌리에 또렷이 박혀 있다. 주도인 호놀룰루가 있는 오하우섬에서 너무나 대조적인 두 가지 풍광을 번갈아 접했기 때문일 게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이라는 와이키키와 미국 태평양함대 사령부가 있는 진주만(Pearl Harbor)이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진주만이 자리잡은 하와이 이외에도 관광선과 군함이 공존하는 항구는 부지기수다. 캐나다의 빅토리아항과 일본의 사세보항, 그리고 프랑스의 툴롱항이 그런 범주다. 세계 3대 미항 중의 하나인 호주의 시드니도 군항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이들 항구는 군함과 관광선이 접안하는 부두의 출입구를 따로 두고 있다. 반면 강정의 해군기지는 크루즈선과 군함이 출입구를 같이 쓰게 된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셈이다.

노무현 정부 때 입안했던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접점 없는 논란에 휩싸여 더디게 진행 중이다. 2007면 5월 후보지 선정이 이뤄졌지만, 반대 주민들과 외지인들의 시위가 이어지면서 공정이 늦어지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는 반대 시위가 역설적으로 순기능을 발휘한 측면도 없진 않다. 해군기지가 친환경·친주민형 항구로 건설되도록 방향이 잡히게 됐다는 점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평화의 섬과 군사기지는 양립 불가능하다는 반대 논리는 세계적 사례와 견줘볼 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무엇보다 그런 주장이 설득력이 없음을 입증하려면 중앙정부나 제주도가 적극성을 발휘해야 한다. 민군 복합형 관광미항 건설 약속이 철저히 준수돼야 한다는 뜻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2012-02-2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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