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군기시 유적/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군기시 유적/서동철 논설위원

입력 2013-01-16 00:00
수정 2013-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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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지은 서울시청 지하에 엊그제 시민청(聽)이라는 문화공간이 문을 열었다. 지하 1층엔 서울의 역사를 보여주는 시티갤러리, 공정무역가게 지구마을,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소개하는 톡톡디자인가게가 들어섰다. 시민의 소리를 듣겠다는 ‘경청의 마당’답게 청계천의 시민발언대도 옮겨왔다. 옛 청사의 태평홀이 복원된 지하 2층에는 공연전시공간 바스락홀, 결혼식장으로 벌써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이벤트홀이 자리잡았다. 청사의 일부를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는 발상이 신선하다. 다만 7842㎡의 작지 않은 공간을 의미있게 만들기가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미 존재만으로도 의미 있는 공간이 있다. 지하 1층의 군기시유적전시실이다. 시청 건립공사 과정에서 드러난 군기시(軍器寺) 건물 터와 호안석축의 일부를 복원해 놓았다. 여기서 출토되어 보물 861호로 지정된 불랑기포의 자포(子砲)와 승자총통을 비롯한 무기류도 전시되고 있다. 조선시대 군기시는 병기를 개발하고 제조하는 관청이었다. 신축공사가 한창이던 2009년 유적과 유물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발굴 조사로 이어졌다. 군기시유적전시실은 새 청사의 건립과 유적 보존 사이에서 타협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발과 유적 보존을 동시에 이루어낸 대표적인 사례는 프랑스 니스의 테라 아마타(Terra Amata) 유적이다. 1966년 아파트 공사 도중 뼛조각들이 발견됐는데, 발굴조사에서 정연하게 퇴적된 11개의 문화층이 나타났다. 특히 맨 아래 문화층에는 인류의 직계조상인 38만년 전 호모사피엔스의 집자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니스 사람들은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 니스시청이 유적이 있는 지하층과 1층을 사들이고, 2층부터 6층까지는 건축업자가 아파트를 그대로 지어 분양토록 한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1976년 개관한 테라 아마타 고인류학 박물관이다.

우리나라에서 건물을 지으며 지하의 유적을 보존한 것은 서울시청이 처음은 아니다. 조선시대 육의전 거리였던 종로3가에 빌딩을 신축하며 상점 유구가 드러나자 보존한 사례가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육의전박물관이 지난해 문을 열었다. 하지만 서울시청이나 육의전 모두 유적 전체의 원형 보존은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은 남는다. 조선왕조가 500년 동안 도읍한 서울은 어디를 파나 가치 있는 유적이 나온다. 로마만 그런 것이 아니다. 서울시청의 사례는 유적 보존을 위해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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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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