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아이슬란드의 꿈과 희망/임병선 체육부 부장급

[세종로의 아침] 아이슬란드의 꿈과 희망/임병선 체육부 부장급

입력 2013-11-21 00:00
수정 2013-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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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의 화산재 날리는 섬나라로만 여겨졌던 이 나라가 가슴을 파고든 건 록그룹 ‘시규어 로스’의 뮤직비디오를 통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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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선 체육부 부장급
임병선 체육부 부장급
웬만한 내셔널지오그래픽 필름보다 잘 만든 뮤비에는 어느 먼 별, 세상의 끝이자 시작이란 바로 이런 곳일 거라고 짐작게 하는 풍광이 수놓여 있었다. 미국 케이블채널 HBO가 제작하는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원작 ‘얼음과 불의 노래’가 딱 어울리는 아이슬란드다. 기회 있을 때마다 여행기나 케이블 채널의 여행 프로그램들을 찾아보며 이 나라를 찾을 날을 기약하게 됐다.

인구 32만명밖에 안 되는 아이슬란드 축구대표팀이 어제 새벽 자그레브에서 열린 내년 브라질월드컵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크로아티아에 0-2로 무릎을 꿇었다. 이로써 국제축구연맹(FIFA) 사상 인구가 가장 적은 나라가 월드컵 본선에 오르는 새 역사도 좌절됐다. 2006년 독일월드컵 본선에 오른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당시 인구 130만명으로 보유하고 있던 기록은 계속 남게 됐다.

FIFA 랭킹 46위인 아이슬란드는 일주일 전 1차전에서 18위 크로아티아와 0-0으로 비겨 온 나라에 모처럼 웃음을 안겨주며 첫 본선행의 꿈을 부풀렸다. 11만여명이 모여 사는 수도 레이캬비크의 라우가르달스볼루르 국립경기장에 입장하기 위해 국민의 10%가 넘는 3만 5000명이 응모해 9800명만 ‘직관’했다고 한다.

열기는 대단했을 것이다. 지난해 FIFA 랭킹 131위에서 무려 80계단을 넘게 뛰어올랐으니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더욱이 대전의 유성 신도시만 한 인구이다 보니 대표팀 선수들과 국민들이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여느 나라와는 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우리네의 2002년 열기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누구나 커피숍에서, 외식을 즐기는 식당에서. 가게 앞에 늘어선 줄 속에서 ‘김신욱’과 ‘손흥민’ ‘이청용’을 발견할 수 있고 손을 맞잡으며 인사말을 건넬 수 있는 나라, 멋지지 않은가 말이다.

강호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자 많은 이들이 얼굴에 국기 문양을 새기고 손에 맥주 컵을 든 채 거리로 쏟아져 나와 2차전 승리를 기원했다고 한다.

5년 전 유럽 현대사에서 가장 극적인 경제 추락을 경험하면서 수치심과 분노에 찬 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의회 의사당에 돌을 던지던 모습과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당시 기업과 공장들은 앞다퉈 문을 닫았고 실업률은 치솟았으며 증시 지수는 90%나 추락했다.

꿈에 그리던 본선행이 좌절된 뒤 아이슬란드인들이 어떻게 백야(白夜)를 지새웠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탄식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본선에 올랐더라면 경제난과 화산재로 얼룩진 국가 이미지를 씻어내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이미 많은 것을 얻었다.

경제난을 불러온 정부를 향한 분노가 축구공에 응축돼 국민들의 열정으로 표출됐을 수도 있다. 이런 도약이 수만㎞ 떨어진 아시아의 한 팬을 감동시킨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축구란 원래 그렇게 즐기는 것이다.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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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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