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여기] 유림이여, 깨어나라/김승훈 문화부 기자

[지금&여기] 유림이여, 깨어나라/김승훈 문화부 기자

입력 2014-12-20 00:00
수정 2014-12-20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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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훈 기자
김승훈 기자
7대 종단 유교 법인인 성균관 재단의 부패가 심각한 수준이다. 공금 유용, 공사 사기, 문서 위조…. 비리 폭로가 줄줄이 쏟아지고 있다. 조선을 떠받친 유림(儒林)의 지도부가 이 정도로 썩을 수 있는 것인지 놀랍고 안타깝다.

성균관 재단의 유림회관 상가 세입자들 임대보증금 유용과 국가 예산 허위 신청·유용 제보를 처음 접했을 땐 ‘설마’ 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대쪽 같은 ‘선비 정신’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서였다. 제보 내용의 사실 여부를 하나하나 확인해 나갈 때마다 실망감이 깊어졌다. 유림 수뇌부의 온갖 추악한 민낯과 직면해야 했기 때문이다.

성균관 재단은 2007년 3선 국회의원인 조홍규(71) 전 이사장 때부터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야금야금 빼먹기 시작했다. 이완희·이순영·최근덕 이사장까지 4대째 내려오면서 보증금 16억 9580만원은 모두 사라졌다. 2010년 최근덕 성균관장이 재단 이사장까지 겸하게 되면서 비리는 더욱 심해졌다. 한 관계자는 “성균관장이 재단 이사장을 겸임하면서 도둑질을 더 편하게 했다”고 전했다. 재단은 보증금 탕진을 감추고 유림회관 관리 위탁을 연장하기 위해 매년 회계를 조작했다. 없는 보증금을 있는 것처럼 꾸민 결산서를 관리감독 기관인 문화재청에 제출했다. 문화재청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허위 보고서’라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관리 위탁을 연장해 줬다. 국가기관까지 전면에 나서 비리를 비호하고 서민의 고혈을 빼먹는 데 동조했다는 데 큰 충격을 받았다.

세입자들은 재단의 전횡을 알지만 선뜻 나설 수 없다. 재단의 심기를 거슬렸다 나가라고 하면 당장 갈 데가 없기 때문이다. 무허가 판잣집들이 즐비했던 50년 전부터 자리 잡아 온 삶의 터전을 등지는 건 더더욱 쉽지 않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재단에서 여러 명목으로 돈을 내라고 하면 낼 수밖에 없는 처지다.

현 조인선 이사장은 더 이상 빼먹을 보증금이 없자 지난해 예식장의 임대보증금을 2억원 올리기도 했다. 복수의 관계자들은 “재단은 유림회관 관리 위탁을 성균관 관련 단체가 아닌 다른 곳에 맡길 수 없을 것이라고 믿기에 비리를 밥 먹듯 저지르고 있다”고 토로했다.

묻고 싶다. 유림은 진정 죽었는가. 유림 지도부가 부패에 부패를 거듭해도 왜 말이 없는가. 유림회관 벽면에는 ‘성균관 재건, 유림 명예 회복’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올곧은 유림이 개혁의 깃발을 들지 않고서는 공허한 울림일 뿐이다. 유림이여, 깨어나라.

hunnam@seoul.co.kr
2014-12-2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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