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후] 각자도생 대한민국/이은주 세종취재본부 차장

[마감 후] 각자도생 대한민국/이은주 세종취재본부 차장

이은주 기자
이은주 기자
입력 2022-11-10 21:37
업데이트 2022-11-11 00:4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은주 세종취재본부 차장
이은주 세종취재본부 차장
그날 이태원 거리를 찾은 시민들의 바람은 소박했을 것이다. 모처럼 마스크를 벗고 핼러윈 거리 축제를 즐기며 코로나19로 쌓인 스트레스를 훌훌 날리고 싶었고, 한국 문화를 사랑했던 외국인들은 ‘서울속의 작은 외국’이라고 불리는 이태원에서 국경 없이 하나 되는 추억을 쌓고 싶었을 것이다. 코로나 기간 단절된 사람들의 온기를 느끼고 싶었던 우리 주변의 평범한 젊은이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설렘과 기대는 한순간에 참혹한 비극으로 바뀌었다. 주말 저녁 서울 한복판에서 156명의 아까운 생명이 희생되는 대참사가 발생했고, 국민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안겼다. 이번 참사는 정부의 무대책, 무능력으로 인해 발생했고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충격과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엔데믹과 맞물려 지난여름부터 각종 축제나 페스티벌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핼러윈은 남의 나라 명절이 아니라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이색적인 하루를 보내는 도심 축제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억눌린 젊은이들의 심리를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공감했다면 주말 핼러윈 축제에 여느 때보다 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어렵지않게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참사 이후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을 보면 얼마나 이들이 형식적이고 획일적인 관료주의에 매몰돼 공감 능력이 결여됐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참사 직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이나 소방 인력 배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해 공분을 샀고, 주민 문자를 받고 참사 사실을 알았다는 용산구청장은 “주최 측이 없는 핼러윈데이는 축제가 아니라 일종의 ‘현상’”이라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 같은 정부 당국자들의 안이한 현실 인식은 현장의 늑장부실 대응을 낳았다. 참사 당일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 재난안전통신망은 작동하지 않았고, 재난문자는 늑장 발송됐으며, 112와 119 신고는 무용지물이었다. 경찰청장이 “제대로 예견하지 못한 이유가 가장 큰 문제”라고 뒤늦게 후회했지만 만시지탄(晩時之歎)에 불과했다. 참사 이후 거의 매일 진행되는 중대본 브리핑에서도 “제 소관이 아니다”, “검토해 보겠다”는 식의 부실한 답변이 난무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는 결코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국가 안전 시스템의 부재로 누구나 유사시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불안감을 심어 준 중대한 사건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정부 고위 당국자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한 1993년부터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 임기 말까지 20년 동안 임기를 3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물러난 장관(부총리 겸직 포함)은 총 16명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는 7명이 중도 하차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3명의 장관이 여론의 뭇매를 받고 물러났다. 개인적인 부정도 있었지만, 국기를 흔든 대형 사고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경우도 상당수였다. 누군들 불명예 퇴진을 원했겠냐마는 막중한 책임이 요구되는 자리인 만큼 민심의 회초리를 따갑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벌어진 이번 참사는 분명 국가의 기본이 흔들린 사건이다. 다시는 이 같은 불행한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책임을 정확히 묻고 일벌백계해 공직사회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 전 국민에게 국가라는 울타리 없이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은주 세종취재본부 차장
2022-11-11 26면
많이 본 뉴스
‘민생회복지원금 25만원’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22대 국회에서 전 국민에게 1인당 2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해 내수 경기를 끌어올리는 ‘민생회복지원금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은 빠른 경기 부양을 위해 특별법에 구체적 지원 방법을 담아 지원금을 즉각 집행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국민의힘과 정부는 행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고 맞서는 상황입니다. 또 지원금이 물가 상승과 재정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지원금 지급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찬성
반대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