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이호왕 박사와 ‘헬조선’/김미경 정책뉴스부장

[데스크 시각] 이호왕 박사와 ‘헬조선’/김미경 정책뉴스부장

김미경 기자
김미경 기자
입력 2020-05-04 17:32
업데이트 2020-05-0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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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경제부장
김미경 경제부장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 등을 취재·보도하는 정책뉴스부를 맡은 지 두 달도 안 돼 폭풍처럼 맞닥뜨린 코로나19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일상’이 됐다. 마스크도 필수품 1호가 됐다.

1월 20일 첫 확진환자 발생 후 한동안 급증하는 환자 수와 동선, 사망자 수 등을 체크하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신천지발 대구·경북 집단감염 등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던 2월 말 하루 신규 확진환자가 900명을 넘어서자 가슴이 철렁했다. 매일 코로나19 관련 기사를 몇 개 면씩 쏟아내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까지 하다 보니 ‘코로나 블루(우울증)’를 떨치는 것이 관건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의대 교수 친구가 응원차 찾아와 점심식사를 했다. 급한 마음에 백신·치료제 개발 등에 대해 캐물었다. 돌아온 답변이 흥미로웠다. “모든 게 의지 문제야. 세계 최초로 한탄바이러스를 발견해 직접 진단법과 백신까지 만든 이호왕 박사님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지.” 이호왕(92)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 1976년 직접 한탄강을 오가며 바이러스를 발견해 한탄바이러스로 명한 뒤 비슷한 바이러스를 묶어 한타바이러스라는 ‘속’이 생기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어 한타박스라는 백신 개발에 성공했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에 이어 코로나19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나라에 44년 전 바이러스를 직접 발견하고 백신까지 만든 박사가 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었다. 코로나19 사태의 교훈을 듣기 위해 서울신문은 이 명예교수를 직접 만났고 그의 인터뷰를 4월 초에 전했다. 이 명예교수는 “바이러스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정부와 의료계의 전폭적 지원과 관심이 있으면 가능하다”고 역설했다.

방역당국의 진단검사·역학조사·격리 등 적극적 조치와 의료진의 헌신적 치료, 국민의 사회적 거리두기 동참 등의 효과로 하루 신규 확진환자는 10명 안팎으로 줄어들었다. 코로나19 발발 초기 우리나라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전 세계 국가들이 이제는 ‘K방역’을 부러워하며 노하우 전수 및 진단키트 수입 문의가 쇄도한다. 특히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 우한과 거리가 멀지 않은 한국을 ‘슈퍼바이러스’처럼 여기던 미국·유럽 등 외국 지인들은 요즘 두려움에 떨며 SNS를 통해 이렇게 털어놓는다. “우리는 식당도 슈퍼도 다 닫았다. 몇 달째 집에 갇혀 나가지도 못하고 있는데 한국이 부럽다.” “하루에 수백명씩 죽어나가는데 많이 안 아프면 병원이 포화상태이니 오지 말라고 한다. 확진 확인도 7~8일이나 걸린다.” “한국의 보건의료시스템이 그렇게 잘 돼 있는지 몰랐다.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다.”

언제부터인가 일각에서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을 종종 듣는다. ‘살기 힘들고 희망이 없음’을 풍자하는 말이라고 한다. 최근 열이 많이 나서 병원으로 옮겨져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한 지인은 7시간 만에 음성 판정을 받은 뒤 “헬조선에 살고 있다고 불평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 모든 것이 어려운 현실이지만 누구나 보건의료시스템에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다면 적어도 헬조선은 아니다. 헬조선이라고 스스로 평가하는 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자초하는 면이 있다면 K방역 덕분에 디스카운트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우리 스스로가 헬조선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환자가 줄어들고 있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국민의 집단면역이 생기지 않았고 백신·치료제 개발에 아직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역당국·의료진의 노력을 바탕으로 제2·제3의 이호왕 박사와 같은 의지의 한국인이 나온다면 헬조선은 잊을 수 있으리라.

chaplin7@seoul.co.kr
2020-05-0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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