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무허가/송경동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무허가/송경동

입력 2020-08-06 17:34
수정 2020-08-07 08:26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무허가/송경동

용산 4가 철거민 참사현장

점거해 들어온 빈집 구석에서 시를 쓴다

생각해 보니 작년엔 가리봉동 기륭전자 앞

노상 컨테이너에서 무단으로 살았다

구로역 CC 카메라 탑을 점거하고

광장에서 불법 텐트 생활을 하기도 했다

국회의사당을 두 번이나 점거해

퇴거불응으로 끌려나오기도 했다

전엔 대추리 빈집을 털어 살기도 했지

허가받을 수 없는 인생

그런 내 삶처럼

내 시도 영영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누구나 들어와 살 수 있는

이 세상 전체가

무허가였으면 좋겠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아침이 지나고 다시 밤이 오는 것 또한 그렇다. 낮과 밤 사이에 걸친 시소. 삶이란 그런 것이다. 라떼는 말이야…. 아무리 꼰대짓을 잘한다 해도 세월은 흐르고 꼰대는 사라진다. 간단명료한 사실을 꼰대는 모른다. 기억에 꼰대가 아닌 몇의 한국인이 있다. 이 시를 쓴 이도 그중 한 사람이다. 낮과 밤을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무허가로 존재하며 무허가 시를 쓴다. 형식은 무허가이지만 삶의 의미는 철저히 인간적이다. 그의 삶이, 그의 시가 어떤 국회의원이나 장관보다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이런 이가 국회의원이나 장관이 되는 세상은 없을까.

곽재구 시인
2020-08-07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투표
'정치 여론조사' 얼마큼 신뢰하시나요
최근 탄핵정국 속 조기 대선도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치여론조사' 결과가 쏟아지고 있다. 여야는 여론조사의 방법과 결과를 놓고 서로 아전인수격 해석을 하고 있는 가운데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론이 그 어느때보다 두드러지게 제기되고 있다. 여러분은 '정치 여론조사'에 대해 얼마큼 신뢰하시나요?
절대 안 믿는다.
신뢰도 10~30퍼센트
신뢰도 30~60퍼센트
신뢰도60~90퍼센트
절대 신뢰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