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우리말] 썩이다와 썩히다/오명숙 어문부장

[똑똑 우리말] 썩이다와 썩히다/오명숙 어문부장

오명숙 기자
입력 2021-12-29 17:16
업데이트 2021-12-30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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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널리고 널린 게 자식 때문에 속 썩는 부모 얘기다. 세종대왕조차 사고뭉치 아들 때문에 속깨나 썩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렇게 말썽 부리는 자식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부모 속 좀 그만 썩혀라.” 한데 이때 쓰인 ‘썩혀라’는 맞는 표현일까.

‘썩다’의 사동사인 ‘썩이다’와 ‘썩히다’는 모두 ‘썩게 하다’란 뜻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썩다’가 여러 가지 뜻의 단어이기 때문에 ‘썩이다’와 ‘썩히다’의 의미도 약간 다르다.

먼저 ‘썩이다’는 ‘걱정이나 근심 따위로 마음을 몹시 괴로운 상태가 되게 하다’란 뜻이다. “이제 부모 속 좀 작작 썩여라”, “여태껏 부모 속을 썩이거나 말을 거역한 적이 없었다”처럼 쓰인다.

이에 비해 ‘썩히다’는 좀더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유기물이 부패 세균에 의해 분해됨으로써 원래의 성질을 잃어 나쁜 냄새가 나고 형체가 뭉개지는 상태가 되게 하다’, ‘물건이나 사람 또는 사람의 재능 따위가 쓰여야 할 곳에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내버려진 상태로 있게 하다’ 등의 뜻이 있다. “음식을 썩혀 거름을 만들다”, “그는 시골구석에서 재능을 썩히고 있다”처럼 쓰인다.

따라서 “부모 속 좀 그만 썩혀라”라는 문장 속 ‘썩혀라’는 ‘썩여라’가 바른 표현이다.

즉 마음이나 골치는 ‘썩이는’ 것이고 음식이나 재능은 ‘썩히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오명숙 어문부장 oms30@seoul.co.kr
2021-12-3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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