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안철수식 메시지 정치 더 이상 감동없다

[사설] 안철수식 메시지 정치 더 이상 감동없다

입력 2012-03-31 00:00
수정 2012-03-31 00:16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메시지 정치’가 또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안 원장은 최근 총선을 10여일 앞둔 시점에서 특정 후보들에 대한 지지 의사를 간접적으로 밝혔다. 민주통합당 인재근 후보(서울 도봉갑)와 송호창 후보(경기 의왕·과천)가 그제 안 원장의 메시지라며 트위터에 공개한 글은 이런 식이다.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김근태 선생과 (부인인) 인재근 여사에게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습니다….” “내가 아는 송호창은 늘 함께하는 사람이며 온유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한마디로 선거에서 이들을 찍으라는 말과 다름없다. 안 원장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도 박원순 후보에게 지지 편지를 건네는 방식으로 선거를 도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바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한마디씩 툭툭 던지는 ‘전언(傳言) 정치’는 이미 안 원장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대학교수의 정치 참여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학교와 정치판 어디가 주무대인지 국민이 보기에 헷갈릴 정도라면 분명 문제다. 결코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교수와 정치인 사이를 오가며 애매모호한 행보를 거듭하는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음을 안 원장 자신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끝내 자기류를 고집한다면 그건 불통의 정치요 권위의 정치다. 국민의 눈높이와는 거리가 멀다. 이제부터라도 타이밍을 살피며 치고 빠지는 양다리 걸치기식 정치를 그만두기 바란다.

안 원장은 며칠 전 서울대 강연에서 “내가 정치 안 하겠다고 선언하면 양당의 정치하는 분들이 긴장을 풀고 옛날로 돌아갈 것이고, 반대로 참여하겠다고 하면 내가 공격대상이 되지 긍정적 발전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다분히 자기중심적인 오만한 발언이다. 기성 정치권을 싸잡아 비판하기 전에 기회주의적으로 비치는 자신의 정치방식부터 되돌아보기 바란다. 자기희생 없이 정치이상만을 강조하는 것은 공허하다. 국민에게 감동을 주기는커녕 식상함만 안겨줄 뿐이다. ‘정치교수’의 폐해에 대한 국민 감정이 이미 임계점에 도달했음은 새삼 지적할 필요도 없다. 안 원장은 스스로 또 다른 정치 불신의 원인 제공자가 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종민 서울시의원 “좋은 사업일수록 더 세심하게”… ‘더 아름다운 결혼식’ 이용편의·공정성 개선 촉구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종민 의원(국민의힘, 비례)은 제340회 정례회 보건복지위원회의 서울시 여성가족실 행정사무감사에서 서울시 공공예식장 사업인 ‘더 아름다운 결혼식’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예약 편의성과 협력업체 배정의 공정성, 실제 예식비용 관리 등 이용자 중심의 운영체계 개선을 촉구했다. 이 의원은 공원과 한옥, 문화시설 등 서울의 공공공간에서 자신만의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의미 있는 사업이라며, 2024년 155건이던 예식 실적이 2025년 280건으로 늘었고 2026년 563건, 2027년 631건의 예약이 확정되는 등 사업이 성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먼저 원하는 날짜에 예약할 수 있는 예식장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고 장소마다 예약 상태 표시 방식이 제각각이라며, 날짜별 가용 장소와 수용인원, 주차 및 피로연 가능 여부, 비용 등을 일목요연하게 비교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과 함께 취소 일정 공석 안내 및 재배정 체계의 개선을 촉구했다. 아울러 공식 홈페이지의 이용후기가 2025년 12월 이후 한동안 업데이트되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생생한 이용후기와 불편 사항, 이에 대한 개선 조치 결과를 주기적으로 투명하게 공개해 시민들에게 실
thumbnail - 이종민 서울시의원 “좋은 사업일수록 더 세심하게”… ‘더 아름다운 결혼식’ 이용편의·공정성 개선 촉구



2012-03-31 27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