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백의 춘향전 소리판 전편을 완성했다는 1926년 11월 23일자 매일신보 광고.
이동백(1866~1949)은 충남 서천 비인 출신의 중고제 명창이다. 송만갑(동편제), 김창환(서편제), 김창룡(중편제), 정정렬(서편제)과 함께 근대 5대 명창으로 불린다. 이동백과 김창룡을 배출한 서천은 중고제의 요람이었다. 이동백은 13세 때 김정근에게 잠시 판소리를 배우고 김세종 문하에서 5년 동안 공부했다. 20세 전후에 도만리 호리산에서 2년간 독공(獨工)하고 다시 진주 이곡사에 들어가 3년간 공부했다. 절에서 나오자 경남 창원부사의 부름을 받고 ‘새타령’을 불러 이름을 떨쳤다. 이후 창원에서 살며 명창으로 차츰 알려졌다. 이화중선 등이 그의 제자다.
이동백은 45세 무렵 서울로 올라와 김창환, 송만갑과 함께 원각사에서 창극을 공연했고, 원각사가 해산된 뒤 연흥사, 광무대 등에서 공연했다. 광고에 나오는 최초의 창극 음반인 ‘일축조선소리반 춘향전 전집’을 녹음했을 때 그의 나이 60세였다. 1933년 송만갑, 정정렬 등과 조선성악연구회를 조직, 이사장을 맡아 판소리 교육에 힘썼다. 1939년 부민관에서 은퇴 공연을 하자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두 달 동안 전국과 만주, 연해주를 돌며 순회공연을 했다고 한다.
풍채가 당당한 이동백의 성음은 매우 미려하고 웅장했다. 판소리 애호가 이영민은 이동백의 풍부한 성량을 여산폭포의 세찬 물결에 비유했다. 고음의 가성으로 새 울음소리나 귀곡성을 표현하는 부분도 탁월했다. 고종은 이런 그를 특히 좋아해 통정대부(通政大夫) 직계를 내리고 어전에서 소리를 하게 했다. ‘심청가’와 ‘적벽가’를 잘 불렀고 특히 새타령은 이날치, 박유전 이후 최고로 꼽힌다. 그의 소리를 담은 음반이 수십 종 남아 있다. ‘흥보가’ 중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 ‘심청가’ 중 ‘범피중류’(泛彼中流) 대목도 걸작이다.
2021-03-08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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