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후기산업사회 진입
오랜 세계질서 모두 바뀌는 중
진리라 믿었던 가치들도 위기
다가올 거대 변화에 대비해야
김세연 전 국회의원
그런데 자동화가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 농업과 건설 등의 현장이 멈춰 서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손이 부족한 곳에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오는 것은 임시방편으로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러나 이민개방을 한 많은 선진국들이 사회통합의 수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점을 떠올리자. 단일민족 의식으로 중무장돼 있는 한국 사회가 그 함정을 쉽게 피해 갈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꿈을 안고 한국에 온 이방인들을 하층계급 취급하며 욕보이지 말아야 한다. 이민개방은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문제에 단기처방은 될 수 있지만 근본적 해법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인구가 급감하는 상황에서 하드웨어건 소프트웨어건 잘 활용해서 노동공급 부족으로 인한 경제 수축을 막아 보자.
그런데 자동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노동 공급의 부족분을 메운다고 해도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일자리와 소득 문제는 어떻게 할 건가? 결혼하고 자녀를 낳을 경우 교육과 주거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결혼도 줄고 출산도 줄고 있다. 결혼이 필수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앞으로는 소수의 예외적 선택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와중에도 귀하게 태어나고 자라난 다음 세대가 대학 교육을 마치고 나도 취업이 제대로 안 된다면? 이렇게 구성원들이 먹고살기 어려워지는 사회는 불안과 동요가 퍼져 지속가능성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므로 정부 기능도 이런 환경변화에 대응할 수 있게 효율적으로 재편돼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이 세상은 이미 우리가 알던 세상이 아니다. 세상은 계속 바뀌어 갈 것이다. 바뀌는 세상을 탓하지 말고 바뀌지 않는 나 자신을 탓하며 우리의 적응력을 높여 나가자.
국제관계도 어지럽다. 전쟁이 언제 어디에서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백 년간 서방 자유세계의 수호자 역할을 해 온 미국도 역사 속 제국들의 흥망성쇠 주기의 마지막 단계로 접어드는 증상들을 속속 노출하고 있다. 트럼프 같은 비정상적·엽기적 인물이 다시 한번 집권하게 되면 전 세계를 암흑기에 빠뜨릴 위험이 있다. 지금도 지구촌에는 자유와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무고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감옥에 갇히는 나라가 곳곳에 있다. 경제적 안정과 번영, 법치와 인권, 자유민주주의 같은 가치들은 너무나 당연해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진리라고 굳게 믿어 왔으나 앞으로의 일이 잘못되면 지나간 추억이나 빛바랜 장식품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아직 파국이 오지 않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가올 풍파에 대비하자. 더이상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정, 지역, 국가, 인류 공동체에 속한 우리 모두가 위험에 빠지지 않고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저 모두가 행복하면 좋겠다.
2024-01-01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