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오래된 것에게

[길섶에서] 오래된 것에게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24-03-18 23:40
수정 2024-03-1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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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버리지 못하는 습벽이 있다. 왜 거기다 모셨는지조차 까마득한 상자들이 집안 구석구석에서 시간을 쌓고 있다. 낡은 상자들의 뚜껑을 열어 보는 것은 언제나 용기백배할 일. 무엇을 보내고 무엇은 더 붙들어 두어야 할지. 사물의 쓸모와 추억의 효용을 저울로 다는 일에는 도무지 내공이 붙질 않는다.

볕이 도타워지는 이런 날. 큰마음 먹고 해묵은 상자를 열었다. 빛이 바랜 수첩 갈피에서 이십 년은 지났을 어느 여름이 쏟아진다. 팔월의 메모장에 끼어 박제된 하루살이 한 마리. 서툰 손글씨가 꼭꼭 눌러 적힌 쪽지 한 장, “국 데워 먹어라.”

삼복에도 더운 국 챙겨 먹으라는 오래전 떠난 엄마의 당부. 식지도 않고 보글보글 끓고 있는 당부.

낡은 일상을 긍정하게 하는 힘은 낡은 시간 속에도 있다. 상자 안의 오래된 것들을 볕바른 곳에 뉘어 살랑살랑 바람을 쐬어 주고 싶어졌다. 오래된 것이 낡은 것은 아니라서.

여기 나를 데려와 더 걷게 할 힘. 낡고 작아서 잊어버린 것들의 입김인지 모른다.
2024-03-19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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