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크림반도의 ‘푸틴 장벽’/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크림반도의 ‘푸틴 장벽’/최광숙 논설위원

최광숙 기자
최광숙 기자
입력 2017-09-29 22:24
수정 2017-09-30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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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07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잊을 수가 없다. 사냥개에 물려 개를 무서워하는 것을 안 푸틴이 회담장에 시커먼 개를 풀어놓은 것도 모자라 호통을 치다가 다시 목소리를 깔고 강요하듯 말하는 등 거칠게 굴었기 때문이다.
푸틴의 이런 행동은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회담 장소로 크림반도의 대통령 별장이 선택된 것도 마찬가지다. 메르켈이 호시탐탐 크림반도를 노리던 푸틴과 이에 반대하는 서방국가 간의 중재자로 나서자 푸틴은 일부러 메르켈을 크림반도로 불러들여 기를 죽이고자 한 것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영토이던 크림반도는 지정학적 위치 탓에 수백년간 동·서 강대국들이 싸우는 각축장이 된 곳이다. 1854~56년 이곳에서는 러시아와 오스만제국(현 터키)·동맹국 간의 ‘크림전쟁’이 벌어졌다. 표면적인 원인은 종교 갈등이었지만 사실은 러시아의 남진 정책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유럽 각국의 견제였다. 러시아는 이 전쟁에서 패배했다. 이 전쟁이 낳은 두 명의 영웅이 있는데 한 사람은 ‘전쟁과 평화’를 쓴 러시아의 대문호인 레프 톨스토이다. 그는 20대에 러시아 포병장교로 참전했다. 또 한 사람은 오스만 측을 지원했던 영국군의 부상병들을 간호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다.

구소련은 여러 차례 전쟁을 통해 크림반도를 확보했으나 1954년 우크라이나 출신인 흐루쇼프가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넘기면서 우크라이나 영토가 됐다. 하지만 유럽과 중동 지역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남진 정책상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포기할 수 없었다. 게다가 러시아는 일 년 내내 기후가 온화해 겨울에도 얼지 않는 흑해의 항구가 필요했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크림반도 남쪽의 세바스토폴항을 우크라이나로부터 장기 임차해 흑해함대를 주둔시켜 왔다.

그러다 2014년 러시아군은 무장병력을 투입해 크림반도를 점령했다. 크림의회는 주민투표를 통해 합병의 찬반을 물었는데 크림반도의 90%가 러시아계 주민이다 보니 압도적인 찬성으로 러시아와의 합병이 이뤄졌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물론 서방국가들은 ‘불법 영토 찬탈’이라며 크림반도의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높이 2m, 길이 50㎞의 이른바 ‘푸틴 장벽’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한다. 크림반도 지배권을 더 확실하게 장악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핵 위기의 한반도만큼이나 크림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심상치 않다. 지구촌 여기저기서 어른거리는 냉전의 그림자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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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7-09-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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