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비겁한 WHO/장세훈 논설위원

[씨줄날줄] 비겁한 WHO/장세훈 논설위원

장세훈 기자
입력 2020-02-11 17:42
업데이트 2020-02-12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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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과 악당은 늘 공존한다.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방식이 이 둘을 나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례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중국 우한에서 감염증 확산 가능성을 처음 경고한 뒤 환자를 돌보다 지난 7일 감염증으로 끝내 숨진 의사 리원량은 ‘영웅 의사’로 추앙받으며 세계적으로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리원량의 대척점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있는데, 이 중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연이은 자충수로 보건 분야 유엔전문기구인 WHO의 권위와 신뢰를 위협하고 있다.

그는 지난 10일(현지시간) 영국과 프랑스 등에서 중국 방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감염 사례가 발생하자 “더 큰 화재로 번질 수 있는 불똥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같은 날 WHO가 집계한 중국 외 감염증 발생 국가가 24개국에 달했다는 점에서 늦어도 한참 늦었다. WHO가 뒤늦게 중국 현지에 조사팀을 파견한 것도 이날이다. 하지만 정작 WHO가 조사팀 파견에 대해 “중국 과학의 최선과 세계 공중보건의 최선을 결합하는 것”이라는 자평을 내놓은 것을 보면 말문이 막힐 정도다.

게다가 지난 8일 WHO의 ‘뒷북 대응’ 논란이 불거지자 “낚시 기사와 음모론과도 싸우고 있다”고 언급했는데, 인류의 건강과 보건을 책임진 국제기구 수장이 맞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앞서 WHO는 감염증 발병이 첫 보고된 지 한 달 가까이 지난 지난달 22일 긴급위원회를 소집했고, 국제 보건 비상사태 선포를 주저하다 지난달 30일이 돼서야 결정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WHO가 중국 정부의 발표에 의존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를 내놓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 미국의 대표적인 청원 사이트에는 그의 퇴진을 요구하는 청원이 빗발치고 있다.

중국이 지난 2017년 발표한 WHO에 대한 600억 위안(약 10조원) 투자 계획과 맞물려 의혹의 시선을 거두기 쉽지 않다. 같은 맥락에서 일본 영해에 있는 크루즈 선박에서 확진환자가 무더기로 나오자 WHO가 이들을 일본 집계에서 제외하고, 같은 날 일본 정부가 WHO에 1000만 달러(약 115억원) 지원 약속을 한 것을 보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졌다’고 평가하기도 어렵다. WHO가 돈 때문에 자존심마저 내팽개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신종 코로나 감염증 확산 사태가 아직 정점을 찍지 못했지만, 조만간 진정될 것이다. 하지만 WHO가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려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24시간 사투를 벌이는 각국의 방역 전문가들과 의료진, 확진·의심 환자 등을 생각하면 WHO의 ‘비겁한 변명’이 더더욱 아쉽다.

shjang@seoul.co.kr
2020-02-12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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