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영국 왕실과 인종차별/이종락 논설위원

[씨줄날줄] 영국 왕실과 인종차별/이종락 논설위원

이종락 기자
입력 2021-03-09 20:18
수정 2021-03-10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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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자체 제작 드라마인 ‘더 크라운’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취임과 재임기에 일어난 각종 정치 갈등과 로맨스, 처칠과 대처 시대의 외교안보 사건 등을 그린 작품이다. 왕실의 존재가 큰 영연방 국가는 물론 영국 왕실에 관심이 큰 미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2018년 에미상에서 감독상과 여우주연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한 수작이다. 2016년부터 시작해 현재 4개 시즌까지 방영된 더 크라운은 시즌4에서 다이애나 왕세자비 얘기가 나오면서 냉정한 왕실 가족들의 실체가 공개됐다. 다이애나비는 당시 서민적 행보로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지만, 불륜에 빠진 찰스 왕세자와의 불화로 고통에 시달렸다. 이로 인해 다이애나비는 섭식장애를 겪고, 왕실 가족과 원만하지 못한 생활을 보낸다.

다이애나비의 생존 시대보다 더 큰 스캔들이 영국 왕실을 덮쳤다. 다이애나비의 둘째 아들인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부부가 영국 왕실의 인종차별 문제를 제기했다. 영국 왕손빈인 마클은 7일(현지시간) 미국 CBS방송에 출연해 “아들이 태어났을 때 피부색이 얼마나 어두울지 등에 대한 우려와 대화들이 오고 갔고, 왕실이 아치를 왕자로 만들기를 원치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었다”면서 “왕가에서의 곤경으로 자살 충동까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해리 왕자도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이런 상황을 알면 매우 분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백인과 흑인 혼혈인 마클은 2019년 5월 아들 아치를 출산했다.

마클의 인터뷰가 방영되자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영국 왕실의 인종차별주의를 비판하는 글이 쏟아졌다. 그동안 영국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유색인종 차별의 문제를 이번 기회에 제대로 짚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영국 전체 인구의 3%가 흑인이지만, 이들이 기업 간부나 고위 공직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그 절반인 1.5% 수준이다. 의회 구성원 650명 중 흑인 등 유색인종은 10%인 65명에 불과하다. 영국 왕실이 국민의 세금으로 지탱되기 때문에 이번에 제기된 인종차별 문제는 영국의 입헌군주제에 중대한 문제로 부각될 수 있다.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왕실 문제와 관련해) 개인적 감정은 희생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장면이 수차례 나온다. 개인보다는 왕족의 평판을 앞세워야 한다는 의미다. 현안이 터질 때마다 신중한 모습을 보인 영국 왕실은 왕손 부부의 인종차별 발언에도 9일 오후까지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번 사안은 왕가의 사생활을 넘어 전 세계의 뜨거운 이슈인 인종차별 문제가 불거졌다는 점에서 영국 왕실은 드라마 속보다 더욱 곤혹스런 상황을 맞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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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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