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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줄날줄] 학폭 엄벌주의/황수정 수석논설위원

[씨줄날줄] 학폭 엄벌주의/황수정 수석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23-04-10 00:59
업데이트 2023-04-1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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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면 다 걸리는 것. 학교 폭력(학폭)의 현실을 비웃는 말이다. 이 냉소를 웃어넘기지 못할 부모들이 많을 게다. 아이가 피해자로든 가해자로든 학폭 심판에 넘겨지는 순간 학교는 학교가 아니다. 변호사의 자문까지 동원되는 법정의 축소판이 된다.

학폭 가해 기록을 대학 정시는 물론 취업 때까지 보존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심약한 학부모에게는 ‘학폭 노심초사병’이 생기지 싶다.

현행 학폭법이 개정된 것은 2012년. 이후 줄기차게 학폭법은 논란이었다. 학폭을 줄이기는커녕 소소한 갈등마저 학폭위에 회부되는 풍토가 심각해졌다. 학폭법에 따라 학폭 사실을 보고받은 학교는 반드시 학폭위를 열어야 했다. 이 규정을 어기면 학교가 학폭을 은폐했다는 법적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러니 아주 사소한 문제라도 교사의 훈계나 중재로 해결될 여지가 없었다.

2019년 이런 규정이 다소 보완되기는 했다. 학교의 자체적 심판기구였던 학폭위원회 기능이 교육지원청으로 상당 부분 넘겨졌다. 교육청의 학교폭력심의위원회가 10~50명의 위원단을 구성해 심판을 맡기고 있다. 이 심의위원회는 전체 구성원의 3분의 1 이상을 학부모 위원으로 위촉하게 돼 있다. 진상조사를 맡아 보고서를 올리는 것은 학폭 담당 교사의 몫. 다수를 차지하는 학부모 위원들이 얼마나 충실히 진상을 파악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상급심’으로 가서 다시 판단을 받으려는 사례가 많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학폭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행정심판 청구는 각각 868건, 447건. 2020년 각각 478건, 175건이던 것이 폭증했다.

정부와 여당이 책상머리에 앉아 엄벌 만능주의 대책을 손쉽게 던지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엄벌주의가 효력이 있었다면 10년 전 학폭법 개정 이후 학폭은 줄었어야 했다. 결과는 반대다. 소년범도 학생부에는 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당장 불거진다. 가해자가 되면 학생부를 제출하는 대입 수시 전형은 거의 포기해야 한다. 거기에 정시를 넘어 취업 때까지 제약이 걸리면 ‘삼중 처벌’인 셈이다. 학폭에 걸리기만 하면 학폭위 단계에서부터 변호사에게 자문하는 살풍경이 벌어질 게 뻔하다. 학생부로 두고두고 처벌을 받느니 자퇴를 선택하는 사례도 줄 이을 수 있다.

가중처벌 일변도의 대책이 최선의 해법일지는 백번 더 고민해야 한다. ‘교육’이 설 땅을 한 뼘은 남겨 둬야 한다.
황수정 수석논설위원
2023-04-1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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