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손타쿠(忖度)

[씨줄날줄] 손타쿠(忖度)

전경하 기자
전경하 기자
입력 2024-08-12 23:45
수정 2024-08-12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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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지역구 도로사업을 내가 손타쿠했다.”

‘손타쿠’는 중국 고전 시경에 나오는 촌탁(忖度)의 일본어 발음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미리 헤아려서 안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지위가 높은 사람이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아랫사람이 알아서 일을 처리한다는 뜻으로 변질됐다. 우리말로 풀어 쓰면 ‘알아서 기기’쯤이다.

2019년 4월 ‘아베 손타쿠’ 발언을 한 국토교통성 부대신(한국의 차관급)은 며칠 버티다가 결국 사퇴했다. 잘 쓰이지 않았던 손타쿠는 2017년 일본의 유행어가 됐다. 재무성이 아베 전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가 명예교장으로 있던 사립학원에 국유지를 헐값에 매각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당시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손타쿠가 정부와 민간 부문에서 횡행하고 있다는 것을 모든 일본인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고 썼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을 손타쿠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30년 지기의 당선을 보는 게 소원’이라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뜻을 헤아려 청와대 참모들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혐의다. 지난해 11월에야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됐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우리은행이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친인척에게 4년에 걸쳐 부당 대출을 해준 사건이 적발됐다. 손 전 회장의 친인척이 전·현 대표 또는 대주주인 법인들이 서류를 누락해도, 담보가 부족해도 대출을 받았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어제 “부당한 지시, 잘못된 업무처리 관행, 기회주의적인 일부 직원들의 처신, 여전히 허점이 있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사건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부당 대출을 초기에 적발하지 못해 일이 커졌을 것이다.

손타쿠는 조직을 부패시킨다. 맹목적 충성심과 강력한 아첨이 아니라 원리원칙에 따른 실행을 높이 평가하면 손타쿠는 자연스레 줄어든다. 우리 사회와는 거리가 먼 듯하니 걱정이다.
2024-08-13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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