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책임지는 사람 없는 ‘의료공백’

[열린세상] 책임지는 사람 없는 ‘의료공백’

입력 2024-08-30 01:45
수정 2024-08-30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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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정치권 중재 나선 듯하지만
여권은 내분, 野는 눈치보기 ‘뒷북’
공동체 윤리 폐허 속에 우리가 산다

전공의 이탈에 따른 의료공백이 시작된 지 어느덧 6개월이 넘었다. 그동안 응급실이 의료진 부족으로 위기를 겪었고, 지연되는 수술을 대기하다가 사망하는 환자들의 숫자가 늘고 있다. 그동안 의료 선진국임을 자부하던 우리로서는 이런 비정상적 상황이 무한정 방치되는 현실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곧 추석이 다가오면서 연휴 기간의 의료대란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평소의 두 배 이상 되는 추석 연휴를 이대로 맞으면 환자들을 돌볼 의료진이 절대 부족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의 중심인 간호사들은 자신들의 희생으로 의료공백을 감당하는 것도 한계에 이르렀음을 호소한다. 그동안 간호사들은 의사들의 빈자리를 채우는 진료지원(PA) 간호사 업무를 하며 몇 배로 늘어난 노동 강도를 감당해 왔지만 더는 버티기 어렵다는 얘기다. 병원은 병원대로 경영난으로 임금체불 사태가 빚어지고 구조조정까지 하고 있다.

이런 심각한 의료공백 사태가 아무런 해법도 찾지 못한 채 반년이 넘도록 계속되고 있는 상황은 비상식적이다. 이 사태가 누구의 책임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대한민국의 수준이 이것밖에 되지 않는지 회의를 느끼게 한다. 국민 입장에서는 정부, 정치권, 의료계 모두의 책임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환자들을 놓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과 일부 의사들의 윤리에 심각한 회의를 갖게 된다. 하지만 이토록 악화된 사태 앞에서도 아무런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정부와 여야 정치권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 보인다.

당초 의대 정원 증원을 비롯한 의료개혁을 하겠다던 정부의 취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근래 들어 정부는 의료공백 사태에 손을 놓아 버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방관하는 듯한 모습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여야 할 정부가 작금의 의료공백 사태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싶다.

최근에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지도부가 내년도 정부 증원안은 유지하되 2026학년도 증원을 보류하자는 중재안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잉크도 마르기 전에 다시 논의하고 유예한다면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유예안을 거부했다. 오늘로 예정됐던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도부의 만찬까지 연기됐다. 정부는 기존 원칙을 고수하고 있고,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여권에만 정치적 책임을 물을 일도 아니다. 엄연히 국회에서는 절대 다수의 의석을 갖고 집권당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다. 사태를 수수방관할 것이 아니라 제1당의 책임에 걸맞은 해법을 제시하며 정부와 여당, 의료계와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지난 4월 이재명 대표는 “국회에 여야, 정부, 의료계,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보건의료계 공론화 특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지만 막상 민주당의 후속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이 대표는 최근 코로나19에 걸려 자신이 직접 병상 체험을 하고 나서야 의료공백의 실태를 조사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이제서야 의료대란 대책 특위를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한 행동에 나서는 모습이다. 야당도 강 건너 불구경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각 주체의 입장이 여전히 엇갈리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의료개혁의 방법론에 대한 사회적 대타협이다. 이제라도 정부와 여야,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합리적 해법을 찾기 바란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들의 분쟁 한복판에서 환자들이 고통받고 죽어 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해관계와 입장이 다르다고 아픈 사람들이 방치되는, 공동체의 윤리가 무너진 사회를 우리는 살고 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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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정치평론가
유창선 정치평론가
2024-08-30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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