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그리스 “시급 4유로 ‘알바’로는 못 살아”

<르포> 그리스 “시급 4유로 ‘알바’로는 못 살아”

입력 2011-06-28 00:00
업데이트 2011-06-2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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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상 있음>>15~29세 실업률 30%..대학생들 “다른 국가로 떠날 것”전체 실업률 16%로 급등..재정난 버금가는 문제

28일(현지시각) 오전 그리스 수도 아테네 도심에 자리잡은 한 건물의 20평 남짓한 1층 사무실에는 번호표를 손에 든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소년에서부터 중년의 남성에 이르기 까지 실내에는 30여명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성들이 남성보다 조금 더 많았다.

이곳은 그리스의 ‘OAED’로 우리나라의 고용센터와 비슷한 업무를 담당한다. 일자리가 없거나 잃은 사람들은 OAED 사무실에서 실업자임을 공식 등록하고 실업급여를 신청한다.

오전 10시30분 한 남성이 번호표 발급기의 버튼을 누르자 198번 번호표가 빠져나왔다.

아테네대학에서 음악공학을 전공한 파풀로스 씨(27)는 “슈퍼마켓에서 1년간 일하다가 얼마 전 그만뒀다. 1시간에 4유로씩, 하루 8시간 일해서 32유로를 받았다. 이 돈으로는 생활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그는 “해고당한 게 아니라 내가 자발적으로 그만뒀기 때문에 실업급여는 못 받는다. 일자리가 없다는 걸 신고하러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 파트타임으로 일하면 시간당 3유로에서 5유로 정도 받는다고 소개했다.

여행사에서 일하다 일자리를 잃었다는 30대 여성 안드레아(33) 씨는 “거리에서 돌아다녀 보면 금방 알 거다. 문을 닫은 상점들이 많다. 내가 다니던 여행사도 장사가 안돼 문 닫았다”고 했다.

국회의사당 앞 신타그마 광장 바로 옆에 있는 아테네 최고 상점가에도 ‘ENOIKIAZETAI(임대)’라는 알림판을 붙인 가게가 적지 않았다.

OAED 사무실의 경비를 맡고 있는 20대 후반의 청년은 여성들이 남성보다 좀 많다는 기자의 말에 익명을 요구하며 “여자도 많고 남자도 많다. 지난해보다 여길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국가부도 위기에 몰려 유로존(유로화 사용국)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지난해 5월부터 구제금융을 받기 시작한 그리스가 심각한 실업사태를 맞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그리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실업자는 79만명, 비(非)실업자는 419만명으로 각각 집계됐다. 실업률이 15.9%로 1년 전보다 4.2%포인트나 치솟았다.

특히 15~29세 실업률은 22.3%에서 30.9%로 가장 많이 뛰었다. 근로의욕을 가진 청년 10명 중 3명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실제 실업률은 통계청 발표 수치보다 훨씬 높을 것이라는 게 실업자들의 생각이다.

8개월 전 직장을 잃은 안드레아스 씨(27)는 “하루 2시간 정도 짧은 기간 일하고 본인 의사와 달리 1~2개월 무급휴가 형태로 있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는 실업 상태인데 일자리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 사람들까지 합하면 실업률은 20%를 넘을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실업자가 속출하는 것은 세계 경기침체에다 재정 위기로 정부 지출은 줄이고 세금은 올리는 긴축까지 가세하면서 그리스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기 때문.

그리스 경제성장률은 2009년 -2.0%, 2010년 -4.5% 등을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마이너스 3%대(정부 전망치)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된다.

줄어드는 경제 규모와 치솟는 실업률은 예비 취업자인 대학생들의 마음을 위축시키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거리에서 전단지 ‘알바’를 하고 있던 아지즈(20) 양은 “졸업하면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데로 떠나겠다는 친구들이 많다”며 “그리스에서 직장을 구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아테네의 한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다는 그녀는 “교사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 학교는 교사를 줄이려 하고, 교사들은 어떻게든 남아 있으려 할 테니 새로 교사를 뽑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정부가 재정 적자에도 불구하고 대학생 학비를 무료로 하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대학생들에게 위안거리가 되지는 못했다.

아테네법대를 졸업하고 법률사무실에서 인턴 변호사로 일하는 게오르기오스(28) 씨의 걱정도 정부 재정 적자와 연관돼 있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유럽연합(EU)으로부터 요구받은 변호사 시장개방이 입법예고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가 어려워지면 법률서비스 수요가 줄어든다. 여기에 외국 변호사들까지 가세하면 무한 경쟁이 될 것”이라며 “아직까진 변호사가 좋은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실업난이 그리스 정부에 재정난에 버금가는 문제로 부상한 모습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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