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가을] 분노의 들불… 미국식 자본주의 틀 흔들까

[미국의 가을] 분노의 들불… 미국식 자본주의 틀 흔들까

입력 2011-10-05 00:00
수정 2011-10-0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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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월가시위 3주째 확산

“몇살인가.”

“고등학교 졸업반이다.”

“어디에 사나.”

“플로리다 잭슨빌에 산다. 지난 주말 친구 2명이랑 16시간을 운전해서 뉴욕에 왔다.”

“무슨 주장을 하고 싶은 건가.”

“혁명을 해야 한다. 빈부 격차가 너무 심하다. 탐욕스러운 부자들한테 중과세를 해야 한다.”

3일 오후(현지시간) 폭스뉴스 제휴 라디오의 사회자가 뉴욕 월가 시위대 중 이름을 ‘헤더’라고만 밝힌 한 여고생과 나눈 전화통화의 일부분이다. 지난달 17일부터 월가에서 시작된 시위는 ‘주요 7개국(G7) 반대’, ‘세계화 반대’와 같은 이전의 경제 관련 시위와는 양상이 확연히 다르다. 고교생까지 ‘혁명’이라는 말을 입에 담을 정도로 시위층이 넓고 시위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며 미국 내 다른 대도시뿐 아니라 캐나다 등 외국으로 확산일로에 있다. 다만 긴축재정 등에 반대하는 유럽 등 다른 나라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와 다른 점은 공격의 화살이 정권이 아니라 월가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 정부가 성장보다는 분배에 치중하는 민주당 정부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이번 시위의 표적은 월가의 금융재벌 등 부유층, 그리고 정치권에서는 부자 증세에 반대하는 공화당이라고 할 수 있다.

월가 시위가 ‘아랍의 봄’처럼 ‘미국의 가을’을 이끌면서 혁명 수준으로 미국식 자본주의의 틀을 뒤흔들어 놓을지는 속단할 수 없다. 민영화와 규제완화, 정부 역할 축소와 극단적인 자유시장 강조 등을 모토로 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폐해가 오늘의 결과를 초래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미국민의 보편적 정서가 자유를 중시하고 사회주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듀크대 4학년에 재학 중인 한국계 학생 최모씨는 “뉴욕 시위 얘기를 하는 학생은 아직 주위에서 못 봤다.”면서 “지금은 시험기간이라 다들 공부에만 신경 쓰고 있다.”고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

또한 시위 지도부가 사실상 부재하고 목표가 일사불란하지 않은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시위 주최측에 해당하는 애드버스터스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번 시위의 목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 하여금 의회에 대한 자본의 영향력을 종식할 위원회를 만들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는 ‘전쟁 반대’나 ‘지구 온난화 해결’ 등이 시위 목표로 등장하는 실정이다. 캘리포니아대의 데이비드 메이어(사회학) 교수는 “시위가 새로운 운동의 서막을 알릴 잠재력은 있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다양한 명분에 대한 일련의 이벤트에 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곧 본격화될 여야 간 재정적자 감축 협상에서 공화당이 끝내 부자 증세에 반대한다면, 시위는 다른 국면으로 확대될 소지가 다분하다. 이 경우 진보 대 보수의 대립으로 양상이 전환되면서 미국 사회가 극심하게 분열될 가능성도 있다. 오바마 정부가 월가 개혁에 미온적으로 나온다면 시위대의 화살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향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에서 젊은이들이 주축이 돼 사회 변혁을 이끈 대표적 사례는 베트남전 반대운동이다. 1967년 4월 뉴욕에서 40만명이 시위에 참가하면서 반전운동이 본격적인 힘을 얻었다는 점, 영국 등 다른 나라로 반전운동이 번졌다는 점, 가수 밥 딜런 등 명사들이 반전운동에 동조하고 나섰다는 점 등이 지금까지의 월가 시위와 비슷한 단면이다. 50만명 이상의 징집 거부로까지 심화되면서 베트남전 철수라는 ‘결실’을 얻어낸 전철을 밟을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1968년 세계를 휩쓸었던 사회적·정치적 변화와 체제에 대한 저항이 있은 지 43년. 2011년 10월 미국과 유럽, 남미, 중동으로 들불처럼 번지는 보통사람들의 분노의 끝이 어디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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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2011-10-0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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