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 조만간 사라지나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 조만간 사라지나

입력 2011-11-20 00:00
업데이트 2011-11-2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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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새도 속수무책..정부 무관심 더 견디기 어려워”

”이젠 한계에 와 있습니다. 나나 집사람이 갑자기 입원이라도 하면 기념관을 돌볼 사람도 없는데 정부는 유럽에 하나뿐인 선열 유적지의 장래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네덜란드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에서 지난 18일 만난 이기항(75) , 송창주(72) 씨 부부는 깊은 시름에 잠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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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의 이기항 ‘이준 아카데미’ 원장이 1907년 7월14일 이준 열사가 분사(憤死) 한 방에서 열사의 유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네덜란드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의 이기항 ‘이준 아카데미’ 원장이 1907년 7월14일 이준 열사가 분사(憤死) 한 방에서 열사의 유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16년 동안 열성을 다해 가꿔온 기념관의 유지가 갈수록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기념관의 장래가 불투명한 것이 고령인 부부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하는 듯했다.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던 교민인 이 씨는 이준 열사가 순국 직전 장기 투숙했던 호텔이 1992년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헤이그시 당국을 설득해 철거를 막고 개인 돈을 들여 매입했다.

1995년 ‘이준 열사 기념관’을 개관한 부부는 지속적으로 자료를 사 모아 전시하는 한편 아이들과 함께 찾는 방문객들과 교민 2세들을 상대로 한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운영해오고 있다.

기념관의 공식 수입은 연간 2천 명 정도인 관람객에게서 받는 입장료(성인 5유로, 학생 3유로50센트)와 2006년부터 지원되기 시작한 정부의 해외 사적지 운영 보조금이다.

”정부 지원이 나온 뒤부터 형편이 나아지긴 했지만 기본 운영비 조달에 항상 쪼들리는 형편입니다.”

정부는 건물유지비나 경상비는 지원하지 못하게 돼 있어 교포 2세들 1일 역사교육 관련 교통비와 홍보비 등만 지원해주고 있고 지난해의 경우 약 1만8천 유로를 받았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다.

문제는 건물의 골조는 튼튼하지만 지은 지 300년이 넘어 곳곳에 물이 새고 하수구가 막히는 등 보수 유지비가 많이 든다는 점이다. 또 건물 보험료, 재산세, 광열비 등등 돈 들어가는 곳 투성이다.

”지난 16년 동안 제 돈을 들여 모자란 운영비를 채워왔으나 이제 저도 늙었고 호주머니도 비어 계속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괴로운건 건물이 쇠락해가는 것이 외국인들에게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기념관 건물의 총면적은 4개 층, 200평이지만 전시실로 사용되는 공간은 2-3층의 70평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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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 건물의 1층은 이기항 원장 부부가 매입할 당시 당구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임대기간 만료 뒤에도 버티던 세입자가 뒤늦게 나가자 이 원장은 개보수해 유럽 한인 독립운동 종합전시관으로 만들려 했으나 자금이 없어 수리도 못한 채 폐허처럼 방치돼 있다. 연합뉴스
네덜란드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 건물의 1층은 이기항 원장 부부가 매입할 당시 당구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임대기간 만료 뒤에도 버티던 세입자가 뒤늦게 나가자 이 원장은 개보수해 유럽 한인 독립운동 종합전시관으로 만들려 했으나 자금이 없어 수리도 못한 채 폐허처럼 방치돼 있다.
연합뉴스
4층의 방들은 비워 둔 채로 있다. 매입 당시부터 세입자로 1층을 모두 쓰던 당구장 주인은 임대기간이 지나도 나가지 않고 버티다 헤이그시 정부의 퇴거 압박을 받고 2006년에야 물러났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 선임비와 세입자 이사비용 등 모두 7만 유로가 들었다. 이 가운데 4만 유로는 헤이그시가 지원해 줬고 3만 유로는 이 씨가 냈다.

”세입자 퇴거 뒤 전체를 개보수해서 ‘이준 열사 기념관’을 평화박물관의 성격을 포함한 ‘유럽 한국 독립운동 종합전시관’으로 확대 개편하고 학생들과 방문객들을 위한 교육과 편의시설들도 갖출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 씨는 당시 보훈처도 이에 공감했고 담당 공무원은 스스로 먼저 개보수 지원 예산을 배정했다고 알려 왔으나 나중에 없던 일이 됐다고 밝혔다. 또 2008년엔 보훈처 관계자가 “만약 매각할 생각이 있으면 정부에 먼저 알려달라. 정부가 매입해 운영할 것”이라며 이를 약속하는 문서를 달라고 해 각서를 써주었으나 2009년 이후엔 거듭된 문의에도 감감무소식이라고 한탄했다.

”1층을 폐허처럼 방치한 지 3년이 됐습니다. 이 동네 사람들과 헤이그시 정부에도 부끄럽습니다. 이 동네가 상업지구로 입지가 괜찮은 편이어서 세들자거나 팔라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오지만 저희 부부의 자존심과 국가 역사를 생각하면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 씨는 자신들이 더 운영하기 어렵고 미국과 한국에서 잘 살고 있는 자식들에게 기념관 유지를 강요하기도 어렵다며 정부가 나서주기를 기대했다.

그는 그동안 열과 성을 다해 모은 귀중한 자료들은 당연히 국가에 무상기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젠 늙고 재산도 없으니 건물은 정당한 가격을 받고 매각해야 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매입, 운영해도 건강이 허락해 주면 80세까지는 이 곳 한 구석에서라도 일을 하며 돕고 싶다”면서 “눈부시게 발전한 한국이 유럽에 유일한 선열 유적지를 이대로 계속 방치할 경우 선열과 역사에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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