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선거 과반… 쉬운 당선
25일 실시된 제4기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서 홍콩 정부 자문기구인 행정회의 의장 출신인 렁춘잉(梁振英·58) 후보가 예상대로 당선됐다. 렁 당선자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로부터 낙점된 후보라는 점에서 일찌감치 승리가 예견돼 왔다. 오는 2017년 첫 직접 선거를 앞두고 중국 정부는 친중국파 행정장관을 내세워 홍콩 다잡기를 강화해나갈 것으로 보인다.홍콩 행정장관 선거위원회는 렁 당선자가 총 1132개 유효표 가운데 과반이 넘는 689표를 얻어 승리했다고 밝혔다고 홍콩 언론들이 일제히 전했다. 선거에는 렁 전 의장 이외에 헨리 탕(唐英年·60) 전 정무사장(司長·총리격)과 민주당 알버트 호(何俊仁) 주석이 출마했으나, 이들은 각각 285표와 76표를 얻는 데 그쳤다.
올해 초까지만해도 중국 정부가 헨리 탕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헨리 탕의 당선이 유력시됐다. 행정 경험이 풍부한데다 홍콩 최대 갑부 리카싱(李嘉誠) 창장실업 회장을 포함한 4대 부동산 재벌, 산업계, 변호사 등 전문가 그룹, 전·현직 고위공무원 그룹 등 홍콩의 관·재계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아 왔다.
하지만 지난 2월 호화 주택 개조, 사생아 출산, 혼외 정사 등 각종 추문이 잇따라 터지면서 지지도가 급락했다. 집값과 물가 상승으로 홍콩인들의 불만이 고조된 상황에서 탕 후보를 당선시킬 경우 예상되는 역풍을 우려해 중국 정부에서 렁 후보 쪽으로 지지를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렁 당선자는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에서 홍콩으로 건너간 이민자의 후손이다. 홍콩이공(理工)학원을 졸업한 뒤 영국 브리스톨대학에서 유학했다. 귀국해 측량과 부동산 컨설팅 분야에서 활동하다 1985년 홍콩기본법 자문위원을 맡으며 정·관계에 입문했다. 1996년 홍콩임시입법회 의원에 당선됐으며, 1999년부터 홍콩정부 자문기구 성격의 행정회의 의장을 맡아왔다.
렁 당선자는 친중파로 중국의 입김에 약하다는 점에서 탕 후보와 별 차이는 없으나 성향은 극과극이다. 선거기간 내내 홍콩인들의 최대 관심사인 ‘내집 마련’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홍콩 부동산 재벌들의 패권을 타도하겠다’고 주장하면서 서민들로부터 지지를 받은 반면 재벌들로부터는 ‘비호감’으로 찍혀 왔다. 리카싱 회장이 렁 후보 지지를 요청한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의 ‘협조 요청’에 고개를 저은 것으로 전해진 것도 렁 후보의 이 같은 반(反)재벌 성향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다.
한편 렁 당선자가 1차 선거에서 가볍게 승리한 것은 시 부주석에게는 호재라는 분석이다. 홍콩이 시 부주석의 관할지역이고 그가 렁 당선자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행여 친중 세력 간 분열로 2차 투표까지 갈 경우 중국의 체면은 물론 시 부주석의 입지에도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은 1997년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후에도 자치권을 가진 특별행정구역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행정장관(임기 5년)은 사실상 홍콩의 최고 통치권자다. 이번까지 정치·경제계 인사 등 1200명으로 구성된 선거위원회를 통한 간접선거 방식으로 행정장관을 뽑는다. 선거위원회에 친중(親中) 성향의 인사가 대부분이어서 중국의 의중이 사실상 결과를 좌우한다. 렁 당선자는 오는 7월 1일 취임한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2012-03-26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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