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언론 “망명한 英주재 北외교관은 선전담당 태용호 공사”

영국언론 “망명한 英주재 北외교관은 선전담당 태용호 공사”

입력 2016-08-17 09:46
수정 2016-08-17 15:14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북한 열정적 선전·대사 아래 직급…“직무에서 마음 떠난 듯”

2001년 북한-EU 인권대화 단장…“외무성 내 최고 서유럽 전문가”
임기만료 귀국 임박…아들 친구 “7월 중순부터 연락두절”


이미지 확대
태용호 이름 표기된 런던 주재 외교관 명단
태용호 이름 표기된 런던 주재 외교관 명단 가족과 함께 제3국 망명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의 외교관은 선전을 담당하고 있는 태용호(Thae Yong Ho) 공사라고 영국 BBC방송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진은 영국 정부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이달 현재 런던 주재 외교관 명단. 태용호 공사의 이름이 있다.
영국 정부 홈페이지 캡처


가족과 함께 제3국 망명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의 외교관은 선전을 담당하는 태용호(Thae Yong Ho) 공사라고 영국 BBC방송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북한대사관 내 서열 2위에 해당하는 고위급 외교관의 탈북은 매우 이례적으로,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 도미노가 본격화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올해 4월 중국 닝보(寧波)의 북한식당 종업원 13명, 5월 중국 산시(陝西)성의 북한식당 종업원 3명이 탈북했으며, 7월에는 북한군 총정치국 장성급 인사가 중국에서 탈북했다는 설이 있었다. 작년에는 대남 공작업무를 총괄하는 북한 정찰총국 출신 대좌(대령급)가 한국에들어왔다.

BBC방송에 따르면 태용호 공사는 가족과 함께 10년 동안 영국에 거주해왔고, 아내 등 가족과 함께 대사관이 있는 런던 서부에서 몇 주 전에 자취를 감췄다.

BBC방송의 서울·평양 특파원인 스티브 에번스는 그와의 개인적 친분을 소개하는 글에서 태 공사가 올여름에 임기를 마치고 평양에 복귀할 예정이었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가 작성한 이달 현재 런던 주재 외교관 명단을 보면 그는 직급이 공사(minister)이며 북한 대사관 내 서열로는 공관내에서 현학봉 대사 아래 차석에 해당된다.

BBC방송은 태 공사를 ‘deputy to the ambassador’ 라고 소개하며 북한의 이미지를 홍보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그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통치가 외부에서 오해를 받고 잘못 보도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고 설명했다.

태 공사는 영국 공산당 모임과 같은 런던에서 열리는 극좌단체 행사에 정기적으로 참석해 때로 이런 주장을 담은 연설을 하곤 했다.

로이터 통신은 그가 북한을 옹호하기 위해 열정적 연설했으나 과장된 수사를 동원하는 다른 북한 관리들과 달리 어조가 차분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태 공사는 때로 북한 혁명군가를 모국어로 부르는 애국심을 과시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BBC방송에 따르면 그는 한 연설에서 영국인들이 지배계층에 세뇌됐다고 주장했다가 관중의 비웃음을 받자 “영국이나 미국에 있는 이들이 자유로운 교육, 주거, 의료가 있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북한을 다시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은 태 공사가 여러 업무를 맡고 있지만 영국 기자들 사이에서는 평양을 취재차 방문할 때 전화를 거는 연락처로 잘 알려져 있다고 밝혔다.

태 공사는 언론과도 정기적으로 접촉해 북한에 대한 보도내용에 공개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기도 했다.

그는 2014년 런던의 한 좌파 서점에서 한 연설에서 “기자들을 욕하지는 않는다”며 “북한 기사를 있는 그대로 써도 방송, 신문 데스크들이 뜯어고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 끔찍하고 더 충격적인 얘기를 쓸수록 영국 대중이 더 많이 본다”며 현지 언론들이 선정성만 좇고 있다고 주장했다.

BBC방송은 공사가 북한을 변호해야 하는 입장이었음에도 제3국 망명을 선택한 것을 보면 그 직무에서 마음이 떠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태 공사의 자녀들은 근처 공립학교에 다녔고 이들 중 한 명은 그 지역의 한 테니스 클럽에서 열심히 활동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태 공사의 막내 아들과 같은 반 친구인 루이스 프리어(19)를 인용해 이들 가족이 7월 중순께 망명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프리어는 자신의 친구인 태 공사의 막내아들이 아버지의 주재 지역이던 덴마크에서 태어났다가 북한으로 돌아간 후 4년 전 영국으로 왔고, 임피리얼 칼리지 런던에서 수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할 계획이었다고 전했다.

프리어는 “우리는 진짜 좋은 친구였다. 그는 매일 페이스북과 왓츠앱을 했는데 갑자기 모든 SNS 계정이 먹통이 됐다”며 “정말 걱정된다. 전화통화도 안 된다”고 말했다.

태 공사는 2001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북한과 유럽연합(EU)의 인권대화에 북한 대표단 단장으로 나와 외교무대에서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외무성 구주국장 대리이던 그는 북한 외무성 내에서 손꼽히는 서유럽 전문가로 알려졌다.

태 공사는 고등중학교 재학 중 고위 간부 자녀들과 함께 중국에서 유학하며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으며, 귀국해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하고 외무성 8국에 배치됐다고 당시 탈북 외교관들이 전했다.

덴마크어 1호양성통역(김정일 총비서 전담통역 후보)으로 뽑혀 덴마크에서 유학했으며 1993년부터 덴마크 대사관 서기관으로 일했다.

1990년대 말 덴마크 주재 대사관이 철수하면서 스웨덴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바로 귀국해 EU 담당 과장으로 승진했다.

런던에 있는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아시아 전문가인 존 닐슨-라이트는 BBC 인터뷰에서 “고위 관계자의 망명이 확인되면 체제에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닐슨-라이트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도 영국과 북한 관계는 매우 복잡다단하다며 영국은 2001년 평양에 대사를 파견했고 문화교류를 하고 있으며, 북한 학생들이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하는 등 학문적인 교류도 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북한 외무상인 리용호가 영국 대사를 지냈고, 현재 주영 북한 대사인 현학봉 대사와의 관계도 밀접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영국 외무부는 보도내용을 확인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BBC는 외무부나 북한대사관 측이 코멘트를 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영 한국 대사관 관계자도 연합뉴스에 이번 사안에 대해 확인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북한대사관의 한 관계자가 탈북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으면서 이번 보도가 “너무 갑작스럽다”며 “답변을 하는게 적절해진다면 우리의 답변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재차 전화했을때는 북한대사관과 통화가 되지 않았으며, 태 공사의 전화도 음성메시지로 넘어갔다고 전했다. 아울러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확인 요청에 코멘트하지 않았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