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자위권 다시 드라이브…아베 ‘과거사 외면’ 가속화미국 ‘한일관계 개선’ 압박할듯…중국과 미·일 대립 심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4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미·일관계가 어떤 영향을 받을지 주목된다.일단 친미 일변도의 외교노선을 추구해온 아베 정권이 일본 국민에게 ‘정치적 재신임’을 받았다는 점에서 양국의 밀월관계가 한층 더 강화될 것이라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중론이다.
특히 이번 선거를 앞두고 일시적으로 수면 아래 가라앉아있던 미일동맹 현안들이 새롭게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자신감을 얻은 아베 정권이 동맹현안을 처리하는데 적극적 으로 드라이브를 걸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다.
안보적으로는 집단자위권, 경제적으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TPP) 협정이 미·일 간의 새로운 협력관계를 이끌 양대 현안으로 꼽힌다.
우선 집단자위권 추진은 ‘보통국가화’로 포장된 일본 재무장화의 필수 요소이자 역내 미일동맹 운용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는 키워드다.
신(新) 고립주의 부상과 재정압박에 직면한 미국에게는 역내 안보부담을 상당 정도 떠안고 국제무대에서 미일동맹의 활동범위를 확대하려는 아베 정권이 ‘최대 원군’이나 다름없다.
미국 의회가 13일(현지시간) 통과한 내년도 국방수권법에서 일본의 집단자위권 추진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넣은 것은 워싱턴 조야의 기류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 집단자위권 추진에 필요한 미·일 방위지침 개정협상은 일단 내년 5월 이후로 미뤄져 있는 상태다. 아베 정권으로서는 이번 선거와 내년 4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앞두고 논란이 많은 집단자위권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미국도 아베 정권이 처한 국내적 상황을 고려해 협상을 일단 ‘보류’ 시켜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이번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집단자위권 추진을 보다 과감하게 밀어붙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 나온다.
미국이 집단자위권 추진 못지않게 관심을 쏟고 있는 대목은 TPP다. 집권2기 후반기에 접어든 버락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업적 관리’ 차원에서 TPP를 조기에 타결시켜야 한다는 절박감이 크기 때문이다.
사실 아베 정권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TPP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돼지고기 등 민감품목과 자동차 시장개방과 관련한 농민층과 소비자단체 등의 반대를 의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의 TPP 추진 의지 자체를 의심스러워하는 기류까지 흘러나왔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이번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만큼 국내적인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TPP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내년 1월 중 워싱턴에서 TPP 관련국 수석대표 회동이 열리고 2∼3월 장관급 회담을 거쳐 내년 4∼5월 TPP 협상을 타결짓는다는 로드맵이 그려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아베 정권의 ‘재신임’과 그에 따른 미일동맹의 강화 흐름은 전반적으로 한국 외교의 운신에 불리한 환경을 조성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도 아베 총리가 한국과 갈등을 빚는 과거사 문제를 놓고 더욱 우경화된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커보인다. 그럼에도, 안보에 대한 일본의 협력이 긴요한 미국으로서는 아베 정권의 ‘역사수정주의’ 행보를 사실상 묵인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우세하다.
나아가 미국은 과거사 문제가 제대로 진전을 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한·일관계를 개선하라는 압박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미 한·미·일 미사일 방어(MD) 협력을 강화하고 정보공유를 확대하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지난주 한 세미나에서 한·일 국교정상화 70주년이 되는 내년에 한·일관계 개선이 미국 대외정책의 우선순위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는 한·미·일 안보협력의 필요성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며 “그러나 군대 위안부 문제 등에서 아베 정권이 진정성 있는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협력이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워싱턴을 무대로 독도와 동해병기 문제를 놓고 일본이 가일층 목소리를 키우면서 한·일간의 외교전이 다시금 격화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더 큰 틀에서 볼 때 아베 정권의 우경화에 터잡은 미일동맹의 강화는 역내 안보질서를 중국 대 미·일의 대립구도로 이끌어가면서 중간에 놓인 한국의 위치설정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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