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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개국 공신 삼봉 ‘정도전’의 영주

조선의 개국 공신 삼봉 ‘정도전’의 영주

입력 2011-01-19 00:00
업데이트 2011-01-19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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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TV ‘학자의 고향’

23일 오후 7시 20분 방영되는 KBS 1TV ‘학자의 고향’에서 삼봉 정도전을 다룬다. 정도전은 널리 알려졌듯, 이성계의 역성혁명을 뒷받침한 조선의 개국공신이다. 개국공신이라면 조선조 내내 숭앙받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되레 줄곧 기피인물로 꼽히다가 500년이 지나서야 흥선대원군이 복권시켜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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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 ‘조선의 장자방’임을 내세웠으나 개국 뒤엔 결국 죽임을 당했다.  KBS 제공
조선의 개국공신 삼봉 정도전. ‘조선의 장자방’임을 내세웠으나 개국 뒤엔 결국 죽임을 당했다.
KBS 제공
대신 조선조 내내 유학자들이 떠받들었던 인물은 정몽주였다. 역성혁명에 반대해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했던 정몽주는 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킨 충절의 표상으로 떠받들어졌다. 한데 개국공신인 데다, 한양천도 작업을 총지휘했고, 법전 마련과 고려사 정리작업에 이르기까지 신생왕국 조선의 기틀을 놓았다고 평가받는 정도전은 계속 묻혀 있었다? 프로그램은 이 지점을 파고든다.

정도전이 역성혁명을 꿈꾸게 된 것은 유배지인 전남 나주에서 만난 백성들의 실태 때문이었다. 온갖 세금과 실정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삶을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위민(爲民) 사상을 되새겼다. 그가 웅대한 꿈을 펼칠 기회를 잡은 것은 이성계와의 만남 이후였다. 이성계의 군대를 보고 능히 국가를 취할 만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도전은 술에 취하면 “고조가 장자방을 이용한 게 아니라 장자방이 고조를 이용했다.”는 말을 내뱉곤 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는 자신이 조선의 장자방이 되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도전에게도 걸림돌은 있었다. 그는 유학자임에도 명나라에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며 요동정벌론을 내세웠다. 외이(外夷)론이 대표적이다. 한(漢)족 외 변경의 오랑캐도 중원을 차지한 전례가 있다, 따라서 조선도 그리 될 수 있으니 굽히고 들어갈 일이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그는 왕권의 절대성보다 신권과의 균형을 강조한 왕도정치론자였다. 이방원에게 끝내 피살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대내외적 안정을 추구했던 조선왕조에 걸맞지 않은 부분이다. 그를 죽인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하자마자 영의정이 각부 신하들의 의견을 취합해 왕과 국사를 논의하던 제도를 각 부 신하들이 왕에게 직접 보고토록 한 것이 단적인 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01-19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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