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비엔날레 개막 현장 가보니
기아자동차는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를 영입해 대히트를 친 ‘K5’ 3대를 나란히 배치해 뒀다. 한 대는 디자인 모델, 한 대는 실제 생산한 차량, 다른 한 대는 택시다. 머릿속 디자인이 실제 상품으로 현실화돼 나왔을 때, 다시 일상에서 흔히 접하게 되는 대상이 되는 순간 디자인이 더 이상 디자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전시 주제를 재밌게 잡아냈다.최첨단 주상복합 프로젝트였던 세운상가의 복권을 얘기하는 세운상가 모형.
앞서 지난 1일 열린 언론 공개회에서 승효상 총감독은 “디자인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 비엔날레답게 기존 디자인에 따르는 관습적인 체계나 분류를 전혀 따르지 않았을뿐더러 전시공간 자체도 작품을 곳곳에 흩뿌려 놓는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5개관으로 구성된 전시관은 언뜻 특별한 주제 의식 없이 마구 나열된 듯 느껴진다.
광주폴리 가운데 스페인 건축가 후안 페레로스가 만든 장동4거리 설치물. 만남의 장소에 걸맞으면서도 나무 같은 주변 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했다.
그러나 시내로 나가 보면 의외로 쉽게 이해된다. ‘5·18 성지’ 금남로공원은 스페인 건축가 알렌한드로 자에라 폴로가 손댔다. 지하상가 입구를 개방적으로 트면서 테라스 형식으로 만들어 뒀다. 장동 4거리 ‘소통의 오두막’은 구불구불 배치된 전등 아래 돌로 된 긴 탁자들을 배치해 뒀다. 옛 시청사거리 ‘열린 공간’은 정자처럼 사방이 터진 공간이다. 상당히 개방적이다. 이런 방식으로 뭔가 특별하다거나 톡톡 튄다기보다는 다들 그 지역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건축가 김수근의 세운상가를 모형으로 만들어 둔 작품이다. 박정희 정권 때 지어진 이 상가는 도로와 주차장, 상가와 녹지공간, 주거공간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혁신적 건물이다.
여기엔 역사적 아이러니가 있다. 세운상가 같은 집단거주지 아이디어는 서구 선진국에서 나왔지만, 실제 많이 지어진 곳은 소련이었다. 급격한 공업화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심신이 건강한 노동자 집단이 필요했고, 당연히 대단위 생산기지 근처에 밀집된 형태이면서도 녹지 등 인간적인 요소가 많이 가미된 거주지가 필요했다. 지하에 주차장을 밀어넣고 녹지를 확충하는 데 여념이 없는, 그것을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내세우는 요즘의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떠오른다. 우리는 지금도 박정희 시대의 세운상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묘한 아이러니다. 10월 23일까지. (062)608-4224.
광주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09-03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