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 띄우는 죽파류 산조…선생님, 공연보고 웃어 주실거죠?

하늘로 띄우는 죽파류 산조…선생님, 공연보고 웃어 주실거죠?

입력 2011-12-05 00:00
수정 2011-12-05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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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죽파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 준비하는 애제자 양승희 가야금산조 명인

달뜬 표정이다. 일이 술술 풀려서다. “선생님 가신 뒤 안 꼬인 일이 없었는데, 이제 웃을 일만 남은 거 같아 너무 기쁩니다.” 죽파 김난초(1911~1989)에게 20년을 배웠건만 매정한 스승은 세상을 뜨기 한 해 전인 1988년에서야 “그만하면 됐다.”는 평을 해줬다. 내년에는 전남 영암군에 김창조·김죽파기념관과 가야금산조테마공원이 완공된다. 문화재청에서 거문고·대금산조와 함께 가야금산조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신청할 터이니 단단히 준비해두라는 말도 들었다.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에서 만난 가야금산조의 명인 양승희(63)는 분주했다. 공연 때문이다. 오는 11일 오후 7시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열리는 ‘인간문화재 김죽파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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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일본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죽파 선생이 손수 써줬던 글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양승희. “유일무이한 내 애제자”라 불렀던 양승희에 대한 깊은 사랑이 담긴 글이 옛 맞춤법 표기로 삐뚤빼뚤 적혀 있다. “처음 받아들었을 때는 내용이 너무 신파조 같아서 싫었는데, 지금은 선생님의 숨결같아서 너무 좋다.”며 웃는다.
1985년 일본 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죽파 선생이 손수 써줬던 글씨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양승희. “유일무이한 내 애제자”라 불렀던 양승희에 대한 깊은 사랑이 담긴 글이 옛 맞춤법 표기로 삐뚤빼뚤 적혀 있다. “처음 받아들었을 때는 내용이 너무 신파조 같아서 싫었는데, 지금은 선생님의 숨결같아서 너무 좋다.”며 웃는다.


●7일 릴레이 연주로 전곡 완성

제자 양승희가 화려한 연주를 선보이냐고? 아니다. 황병기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 이영희 한국국악협회 이사장, 이재숙 한양대 석좌교수 등 국악계 거장들이 총출동한다. 55분 분량의 죽파류 산조를 연주하되 이 거장들이 릴레이 연주 형식으로 전곡을 완성해보인다. 여기다 풍류, 병창까지 가미했다. 국악계에서는 보기 드문 진귀한 공연이라는 입소문이 가득하다.

양승희는 서울대 국악과 2학년 때부터 죽파에게서 배웠다. 조금 욕심낼 법도 하지 않을까. “아니에요, 전혀. 제가 지금 와서 빛나면 뭐하겠습니까. 다만 죽파 선생님이 이 공연을 보시고 지하에서라도 크게 웃어주셨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황병기, 이재숙 선생님 같은 분들이 흔쾌히 승낙하셔서 공연이 성사됐으니 제자인 저로서야 뭘 더 바라겠습니까.”

●가야금 산조 세계문화유산 추진

가야금·거문고·대금산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려면 역사성이 있어야 한다. 100년 이상 전승되어야 하고, 이 전승을 기록으로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가야금산조는 김창조(1856~1919)가 창시했고, 가야금산조를 본받아 거문고와 대금산조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죽파를 통해 계승됐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걸 해낸 이가 바로 양승희다.

“1990년이었어요. 미국에 살던 남동생이 한국 관련 공연을 몇 번 주선했거든요. 그러다 저의 중국 공연도 주선했지요. 그때 옌볜대 교수였던 김진 선생을 만났습니다.” 행운의 시작이었다. 북한 유학 경험이 있는 김진은 ‘조선예술’, ‘조선음악’, ‘문화유산’처럼 북한이 공식발행한 문화예술 관련 연구책자와 논문을 가지고 있었다. 이 가운데 350여권의 자료와 968편의 논문을 복사해왔다. 이것만해도 큰 소득이었는데 안기옥 얘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안기옥(1894~1974)이 바로 김창조의 제자였던 것. 안기옥은 김진에게 “우리 음악은 모두 구전으로 전하는 것이라 기록이 없으니 바이올린을 공부한 자네가 서양 악보로 기록해두게.”라고 한 것이다. 안기옥이 같은 부분을 세 번 연주하면 김진이 악보에 적어두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양승희로서는 관련 연구는 물론, 생생한 악보까지 한꺼번에 거머쥐었으니 횡재한 셈이다.

●김창조 창시… 죽파 계승 입증

어떻게 전해졌을까 궁금해서 악보를 들여다보니 김창조산조 459가락 가운데 112가락이 죽파류산조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순서가 섞여 있고, 김진 선생이 아무래도 서양음악 전공자다 보니 약간 잘못 기록한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내 연주는 할아버지 김창조에게서 나왔으니 뿌리를 밝혀라.’라고 했던 스승의 말씀이 그대로 확인되는 순간이었지요.”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는 한·중 국교 수립 이전. 안기옥은 광복 뒤 월북해 평양음대 교수 등 북한 전통음악계를 거머쥐면서 1급 인민배우 호칭을 받은 거물이었다. 김진 선생에게서 얻은 자료를 몽땅 압수당했다. “‘인민’이란 단어만 들어가면 다 압수됐어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악보는 음표만 있으니 그냥 주더라고요. 악보를 보고 연습은 하는데, 저 많은 자료를 어쩌나 싶은 거예요. 스승의 유언이 시초와 계통을 밝히라는 것이었데…. 정말 막막했습니다.”

●“선생님께 부끄럽지 않은 제자로…”

그때 도움을 준 사람이 정명근 CMI 대표.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의 형인 그가 산조 연주를 한번 청해 듣더니 “이 모두 뿌리를 찾는 작업”이라며 자료를 돌려 달라고 백방으로 호소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 덕에 차츰차츰 자료를 돌려 받았고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1999년 김창조산조를 복원해낼 수 있었다. 지금의 이런 경사들은 그때 10여년간의 고생이 낳은 성과들인 셈이다.

“여한이 없을 것 같다.”는 말에 아직 하나 남은 게 있다고 한다. ‘청출어람’이란다. “나중에 동양철학 공부를 해보니 동양 예술론은 딱 두 개예요. 하나는 예술로 세상을 계도하라는 공자의 ‘위인생’(爲人生)이고, 다른 하나는 예술 그 자체의 가치를 찾는 장자의 ‘위예술’(爲藝術)이에요. 생각해보면 스승님은 장자 쪽이었던 것 같아요. 연주하는 사람은 연주에만 몰두해야 한다고 대학교수도 못하게 하셨거든요. 속으론 가슴이 아렸지만 선생님 뜻인 걸 어떡해요. 그러면서 늘 ‘나보다 네가 더 낫고, 너보다 네 제자가 더 나아야 한다’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셨어요. 그런 선생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제자를 남겨야지요.”

글 사진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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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05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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